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3월 13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교황 프란치스로 모습을 드러낸지 100일(6월 20일)이 지났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지켜본 이들은 베르골료와 프란치스코라는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흰색 수단만 간소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교황은 첫 축복을 내리기에 전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신자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을 교황 대신 "로마의 주교"로 소개했고, 첫 인사를 끝내며 "좋은 밤 되시고 편히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함과 검소함, 고개를 숙이며 로마의 주교로 자신을 낮춘 겸손함, 광장에 모인 이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건넨 친근함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교황은 지난 100일간 이 같은 `프란치스코 스타일`로 가톨릭교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희망
교황 프란치스코는 `청빈`을 서약한 수도회 출신 교황이다. 예수회가 배출한 첫 교황인 그는 추기경 시절에도 개인비서와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사목방문을 다녔다. 작은 아파트에 살며 끼니도 직접 해결했다. 이 같은 검소함은 교황이 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해 머물렀던 호텔 비용을 직접 카드로 계산해 화제가 됐다. 교황을 상징하는 의복과 장식은 최소화했다. 교황 십자가는 자신이 사용하던 낡은 십자가를 그대로 썼고, `어부의 반지`는 교황 바오로 6세에게서 선물 받은 은반지를 금으로 도금해 재활용했다. 구두도 그대로였다. 개인 도서관과 경당이 딸린 화려한 교황궁 대신 교황청 방문객이 머무는 성녀 마르타의 집을 숙소로 쓰기로 한 결정은 세상엔 파격이었지만, 교황에겐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교황은 선출 직후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 착좌식에 참석하고 싶어하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겐 "나를 만나러 로마에 오는 대신 그 비용을 가난한 이를 위해 써 달라"고 했다. 교황 가족조차도 교황 착좌라는 역사적 순간을 아르헨티나에서 TV를 통해 봐야 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질의 우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며 가난과 나눔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노숙인이 추위로 얼어 죽는 것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를 개탄했고 사제들에겐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찾아가라"고 거듭 촉구했다.
교황의 말은 그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 청빈한 삶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청빈은 그 어떤 장식보다 교황을 빛내주고 있다.
#자신을 낮추고 신자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려
교황의 행보는 교황이라기보다 본당 사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교황으로서 첫 주일을 맞은 교황은 예고 없이 로마에 있는 성 안나성당을 방문해 본당 신자들과 함께 아침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끝낸 뒤엔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과는 스스럼없이 우스갯소리도 주고받았다.
교황은 최근 어린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왜 교황궁에 살지 않느냐는 한 어린이 질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성녀 마르타의 집에 사는 교황은 매일 아침 7시 성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방문객 50여 명과 미사를 함께한다. 홀로 고립된 교황이 아니라 늘 신자들 곁에 있는 목자의 모습이다. 그는 교황이라 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신자들 뒤에 앉아 미사를 기다린다. 하루 종일 서서 교황 숙소를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에게 의자를 갖다 주고,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교황이기도 하다.
"사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교황은 주님만찬 성목요일에 청소년 보호시설을 방문,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발을 씻겨줬다. 12명의 아이들 중에는 여학생과 무슬림 청소년도 있었다. 교황의 발씻김 예식 때 여성과 무슬림 신자가 참여한 것은 교회 역사상 처음이었다. 교황에겐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교회 관습보다 더 중요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렸던 수요 일반알현 장소를 성 베드로 광장으로 옮겼다.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입장할 때 광장 구석구석을 돌며 몸이 불편한 이들을 축복하고, 아기에게 입을 맞춘다. 수요 일반알현과 주일 삼종기도 때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는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유머러스하면서 이해하기 쉽고 핵심을 찌르는 강론 역시 그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소통을 통한 교회 개혁 시동
교황 이름처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모범을 따르는 교황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치솟는 인기만큼이나 높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론 최초이며, 교회 역사상 1200여 년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교황이 권력형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진 교황청을 어떻게 쇄신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황은 선출 한 달만에 교황청 쇄신과 개혁을 위한 추기경 자문단을 꾸리며 교황청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혼자 판단하지 않고 추기경단과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바티칸은행 투명화에도 힘쓰고 있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교황청 장관과 위원장 등 주요 기관장 인사가 이번 가을에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문 추기경단과 첫 만남이 10월로 예정돼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황청 개혁이 단기간에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교황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사제 성추행, 낙태, 콘돔사용, 동성결혼, 여성사제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문제들에 관해 교황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