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 순교자들의 믿음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성당" - ①양양성당
![]() ▲ 양양성당은 영동지역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로 1921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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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의 비경을 품고 있는 강원도 양양.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남설악 오색령(한계령)과 남대천 청정수 지역을 끼고 있는 산 좋고 물 맑은 한 폭 수채화 같은 고장이다. 양양읍에 들어서 군청을 끼고 돌아서면 언덕 위 하얀 집이 나온다. 바로 양양성당이다.
춘천교구 사적 `착한 목자 기념 성당`인 양양성당은 영동지역 가톨릭 신앙의 못자리이다. 이곳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병인박해 때 충청도에서 피신해온 신자들에 의해서였다. 더 숨을 곳이 없던 교우들이 설악산을 넘어 `범뱅이골`(양양)과 `싸리재`(속초)로 숨어들었고, 이들 교우촌이 모태가 돼 1921년 양양본당이 설립됐다.
![]() ▲ 순교자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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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성당은 여느 시골 성당처럼 소박한 모습이지만 순교자 이광재(티모테오,1909~1950) 신부 때문에 전국에 알려진 유명 성당이다.
3대 주임인 이광재 신부는 강원도 양양읍 성내리 8 지금의 양양성당 터에 붉은 벽돌집 슬레이트 지붕 성당과 사제관 부속건물을 완공했다. 하지만 일제 말기 일본군이 성당을 빼앗는 바람에 이 신부는 성당 쪽방에서 살아야 했다. 해방되자 38선 이북에 있던 양양성당은 소련군에 의해 또 한 번 수탈을 당한다. 언덕 위 성당이 무전시설로 그만이라며 강제 징발한 것이다. 이 신부는 성당 안에 있는 비밀 다락에 성체를 모셔두고 미사를 봉헌하다 발각돼 부속 건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소련군이 물러가 성당을 되찾는가 했는데 이번엔 북한 인민군이 성당은 물론 부속건물까지 모조리 차지했다.
▨성직ㆍ수도자 남하 교두보
북한 공산당의 박해를 견디다 못한 원산ㆍ함흥ㆍ연길 등지에서 활동하던 많은 성직자, 수도자와 신자들이 월남을 감행하기 위해 38선과 가장 가까운 양양성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광재 신부가 걸었던 `순교의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민군과 주민의 삼엄한 감시를 따돌리고 이들을 남하시키는 일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광재 신부는 "나보다 훌륭한 성직자와 수도자가 한 명이라도 더 내려가는 것이 남한에서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며 탈출을 도왔다.
정작 이 신부 자신은 끝까지 남아 성당을 지키다 6ㆍ25전쟁 발발 하루 전날 인민군에 체포돼 원산교도소에 갇혔다가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그해 10월 9일 방공호에서 무참하게 총살됐다.
▨38도보 순례 10km 조성
정전 60년이 된 지금도 양양 신자들의 가슴 속에 이 신부는 `착한 목자`로 각인돼 있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착한 목자의 자취와 믿음은 양양성당 내 순교각과 기념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또 양양본당 신자들은 본당설립 80주년이 되던 해인 2001년부터 이광재 신부의 도움으로 성직자ㆍ수도자들이 남하한 길을 따라 10km를 걷는 `38도보 순례`를 연중으로 해 오고 있다. 춘천교구 역시 교구 설립 70주년을 맞은 2009년부터 매해 10월 교구 차원에서 이 행사를 하고 있다. 순례 문의: 양양성당 033-671-8911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