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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기획] 목자는 양을 위해, 양은 목자 위해 순교 동행

''6ㆍ25 순교자 믿음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성당'' - ⑧대전교구 합덕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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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내포지역 신앙의 못자리에 지어진 합덕성당은 대전교구 성소의 못자리이며 순교지이다.
사진은 종탑이 두 개인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합덕성당 전경. 평화신문 자료사진
 
   충남 당진 합덕본당은 대전교구 첫 번째 본당으로 1890년 설립됐다. 양촌본당으로 처음 설립됐으나 9년 뒤 충남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275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을 합덕본당으로 바꿨다. 이후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본당이 생기자 구합덕본당으로 불리다 1997년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합덕본당은 대전교구 모본당이지만 성당은 공세리에 이어 1929년 두 번째로 완공됐다. 넓은 내포평야가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합덕성당은 고딕 건물로 종탑이 두 개인 것이 특징이다. 공세리성당을 설계한 드비즈 신부가 설계해 성당 내부는 공세리와 흡사하다.

 충청남도 문화재 제145호인 합덕성당은 제7대 주임 페랭(한국명 백문필, 1921~1950년 재임) 신부 때 지어졌다. 신자들을 등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제대와 영성체 난간틀, 십자가의 길 14처, 성당 벽면 양측 창의 색유리화가 유서깊은 성당의 정취를 자연스레 담아낸다.

 초기 교우촌에 터 잡은 신앙의 못자리인 합덕성당은 대전교구 성소의 못자리이기도 하다. 이 본당에서 배출한 사제 수도자가 100명이 넘는다.

 합덕성당은 또 6ㆍ25 순교자 세 분을 배출한 순교지이다. 북한 공산군이 남침하자 합덕본당 교우들은 30년째 본당을 사목하고 있던 주임 페랭 신부에게 피란을 권했다. 그러자 페랭 신부는 "내 양들을 위해 끝까지 남아서 교우들과 함께 순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 후 교회 재건을 위해 보좌인 박노열 신부를 남하시키고 홀로 성당에 남아 있다가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인 1950년 8월 14일 고해성사 중에 인민군에 체포돼 끌려가 순교했다.

 페랭 신부의 순교길은 외롭지 않았다. 목자는 양을 위해, 양은 목자를 위해 순교의 길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페랭 신부가 합덕성당에서 체포될 때 윤복수(라이문도) 회장과 송상원(요한) 복사가 "신부님과 함께 잡아가시오"라며 사지로 잡혀가는 페랭 신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들 셋 모두는 당진 성당 아래 군청 자리에 있는 내무서로 끌려갔다가 페랭 신부는 9월 22일께 예산을 거쳐 대전 목동 형무소로 압송돼 9월 23~26일 사이에 피살됐다. 당진 내무서에 갇혀 있던 윤 회장과 송 복사는 9월 29일 밤 끌려나가 처행됐다.

 합덕성당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페랭 신부 순교 기념비가 서 있다. 1955년 본당 신자들이 그의 사랑과 공덕을 높이 받들고자 세운 것이다. 또 합덕본당 출신 사제들이 본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마련한 페랭 신부 청동 흉상이 있다. 성당 뒤뜰 성직자 묘역에는 페랭 신부와 성 김대건 신부의 스승인 매스트르 신부, 홍요한 신부, 심 마르코 신부 등 4명의 성직자 무덤이 있다.

 한편, 대전교구는 내포지역 순례자들을 위해 여사울성지-신리성지-합덕성당-솔뫼성지 15km 도보순례 길을 조성해 놓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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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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