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승 선임연구원, 이존창ㆍ인언민 등 신분 사천ㆍ상한 주장
충청도 내포에 천주교를 전파한 인물로 이존창과 함께 시복을 앞둔 순교자 홍낙민(루카, 1751~1801)과 홍낙교 형제가 새롭게 떠올랐다. 내포지역에 천주교가 전래한 시기도 홍낙민ㆍ낙교 형제가 입교한 1784~85년 무렵으로 앞당겨질 수 있으며, 1791년에는 천주교가 이미 내포를 넘어 공주와 보령, 아산, 직산, 천안, 청주, 청양, 충주 등 충청도 전역에 전파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12일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1791년 내포 : 박종악과 천주교 박해`를 주제로 연 제180회 교회사 연구발표회에서 소장 국문학자 장유승(37)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발표로 밝혀졌다.
최근 정조가 신하들에게 비밀리에 보낸 어찰(御札) 1200여 편 중 신하의 답장을 최초로 발굴 공개했던 장 연구원은 이날 내포교회에 대한 이런 내용을 첫 공개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수기(隨記)」라는 문서첩에 수록된 이 내용은 당시 충청관찰사 박종악(1735~95)이 정조에게 보낸 1791년 12월 11일자 편지와 별지, 1792년 1월 3일자 편지에 동봉한 별책에 들어 있다.
장 연구원은 1791년 윤지충(바오로, 1759~1791)과 권상연(야고보, 1751~1791)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진산사건`을 계기로 보낸 비밀보고서에서 박종악은 내포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한 인물로 홍낙민ㆍ낙교 형제를 꼽고, 홍낙민을 `호중(湖中, 충청도의 별칭) 사학의 종장(宗匠)`으로 지목했으며, 1791년 12월 11일자 편지에 드러난 내포의 천주교 신자는 10개 고을 94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박종악은 이들 형제의 전장(田庄)이 있는 예산군 두촌면 호동리(지금의 여사울) 100여 호 가운데 서학에 물들지 않은 가구가 20호에 불과하며, 1791년 무렵에는 이미 천주교가 내포를 넘어서서 충청도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보고했다. 특히 내포의 강문리나 우평리, 홍주 신당의 신평리, 암도 등지는 온 마을이 대부분 천주교로 물들었다고 전했다.
이 「수기」는 초창기 천주교 수용이 양반에 국한되지 않고 신분을 초월해 양인이나 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내포의 사도`로 알려진 이존창은 양반이었다는 기존 설과는 달리 사천(私賤), 곧 사노비 출신이며, 수기에서는 시복되는 124위 순교자 가운데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도 양반이 아니라 상한(常漢, 양인이나 천민)이라고 기록돼 있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에 대해 원재연(하상 바오로) 덕성여대 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토론에서 "오늘 발표는 기존에 교회사학계가 인식하고 있는 초창기 한국 천주교회사에 상당한 수정 내지 보완을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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