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봉동본당, 죽음체험과 영정거울 등 이용 성목요일 성체조배
17일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가 끝난 밤 11시. 서울 개봉동성당(주임 이철학 신부) 영안실에 연도가 울려 퍼졌다. 연도 소리와 함께 한 청년이 차가운 철판으로 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머리 위까지 덮어지는 까만 천. 청년은 누운 채 잠시 죽음을 느껴본다. 이어 거울에 영정 띠를 두른 ‘영정 거울’을 통해 영정 속 자신을 바라보며 나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묵상한다. 개봉동본당 성목요일 성체조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서다.
이날 80여 명의 신자는 조별로 6개의 성목요일 성체조배 프로그램, 즉 △영정 거울을 바라보며 죽음 묵상하기 △직접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성만찬 재현하기 △성모님과 예수님을 떠올리며 직접 묵주를 만들고 묵주기도 바치기 △두 사람이 눈먼 사람과 말 못하는 사람이 돼 함께 길 걷기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며 하는 떼제기도 △성체조배를 체험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직장인이었지만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밤에 진행한 다채로운 활동들은 오히려 신자들이 밤새 깨어 예수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할 수 있게 도왔다.
이날 성체조배에 참가한 이숙자(비르지타, 59)씨는 “묵주를 만들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이 떠올라 울컥했다”며 “평소 성체조배와 달리 성삼일을 더 깊게 묵상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윤희영(가타리나, 34)씨는 “영정 거울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에는 추상적으로만 받아들였던 예수님 죽음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성체조배는 본당 사제들과 평신도 봉사자들의 합작품이다. 새로운 성체조배에 대한 사제들 제안에 봉사자들이 뜻을 같이하고 적극적으로 진행을 도운 것이다. 40~50대 봉사자에게 프로그램 진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책을 보고 공부하며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새벽까지 리허설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성체조배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정상(토비아, 63)씨는 “1년에 한 번 있는 성목요일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봉사자로 지원했다”며 “내일 출근하면 피곤하겠지만 주님께서 더 큰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천재용 부주임신부는 “사제들이 기본 틀을 제시했을 때 신자들이 좋은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에 살을 더했다”며 “함께 준비해 더 알찬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내비쳤다.
이철학 주임신부는 “신자들에게 성목요일 성체조배가 반복적 예식이 아닌 주님 죽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신자들이 앞으로 삶에서 주님 만찬 정신을 실현하는 데 이 프로그램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