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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퇴근길, 노약자석에 앉아 책을 읽는데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일흔은 넘으셨을 한 할머니를 내 앞에 모셔왔다.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표정을 한 아저씨는 나를 향해 말없이 손짓으로 일어나라는 시늉을 했다. 읽던 책을 덮고 부랴부랴 가방을 어깨에 메는데, 아저씨가 말했다.
“임산부 아니죠?”
정의감으로 가득 찬 아저씨는 “임산부 맞아요…”라는 기어들어 가는 내 목소리에 조금 놀라며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할머니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셨다. 순간, ‘일흔이 넘은 백발의 할머니가 서 계신데, 내 배가 무겁다는 이유로 노약자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임산부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을 이용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노약자석에 앉는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맞은편 노약자석에서 ‘젊은 사람이 뭐가 불편해서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건지…’ 하며 눈총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한번은 어느 젊은 여자가 노약자석에 앉아 있자 한 연인이 수군거렸다. “이런 것들은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놔야 해.”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초기 임산부에게도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지하철의 안내방송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설령 초기 임산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배탈이 났거나 몸이 불편한 상황일 수 있는데…. 언제부터 배려와 관심 없이 규칙만 지키는 사회가 돼 버린 걸까.
어느 순간, 노약자석에 있는 게 불편해 자리를 일반석으로 옮겼다. 임산부 배지를 달고 서 있는 게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했다. 임신하고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행선지까지 고개 한번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노약자석에 앉은 이들은 항상 자신보다 더 약자인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주변을 살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좋은 사람도 많았다. 지하철 한가운데에서 휘청이는 나를 손으로 잡아끌어 자리를 양보해준 아저씨도 있었고, 입덧은 없느냐고 물어보는 할머니도 있다.
내 뱃속에 생명을 품고 보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몸이 가벼웠던 시절, 지하철에서 살 부딪히는 거리에 있는 이웃과 단절한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디지털 세상에서만 시간을 보내곤 하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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