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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순교자 현양 특강

<2>오늘의 박해와 순교자적인 삶이란? 정신철 주교(인천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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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구 총대리 정신철 주교

9월이면 전 교구가 순교정신을 잇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본당에서는 순교자 성월 기도문도 바칩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행사로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도 많이 봅니다. 게다가 연례행사처럼 형식적이고 매너리즘과도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물리적 박해가 있었지만, 현재는 없는 것과, 순교의 의미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괴리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물리적 박해’가 추구하려는 목적은 신앙을 위협하고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요즘은 또 다른 형태로 신앙을 위협하는 일이 많습니다.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성 김 도리 헨리코 신부님이 계십니다. 신부님은 27세에 순교해 성인이 되셨습니다. 신부님의 후견인과 본당 신부님조차 대신학교 입학을 반대했고, 부모님도 사제가 되는 것은 허락했지만, 파리외방전교회 입회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하느님 뜻이기에 순명해야 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부모님 반대처럼 마음을 흔든 일도 없었을 것이지만, 신부님은 복음선포에 모든 것을 내어 놓았고, 인간적인 정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시며 순교하셨습니다.

현대인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박해는 우리의 이성적 사고와 논리에서 나옵니다. 인간적 판단으로 ‘과연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면,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의 뜻을 하느님 뜻인 양 신앙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적 생각과 논리, 판단이 앞설 때 하느님이 설 자리는 사라집니다.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순교자들이 어떻게 박해와 고통을 이겨냈는지 생각해봅시다. 순교자들의 신앙은 순간을 넘어 하느님 안에 영원한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라는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그들은 하느님의 영원 안에서 현재를 사셨던 분들입니다.

우리 인생 역사 안에서 현재의 시간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고통의 시간도 그렇습니다. 인생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자신에만 갇혀 있기에 더 넓고 깊은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살아가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모습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하고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말씀이 구체적인 순교자적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 모두의 내어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모범처럼, 지금 이 순간 주님을 보여주는 증거자의 모습을 살겠노라고 다짐합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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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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