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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수일 주교 |
제 삶을 돌이켜볼 때, 가장 고맙고 가장 중요한 추억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됐고, 이 믿음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당신께 대한 믿음을 얼마나 많이 자주 요구하시는지를 발견합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주님이 카파르나움에 계실 때, 동네 사람 넷이 한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실어 주님을 찾아갑니다. 동네 사람들은 힘들게 주님이 계신 곳에 왔지만,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자 포기하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내 이 중풍 병자를 내려보내 주님으로부터 병치유와 구원이라는 두 은혜를 얻게 됩니다. 아마 주님도 이들의 믿음의 정도를 알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그들의 마음 자세를 ‘믿음의 자세’로 고마워하시며 죄의 용서, 곧 구원을 은혜로 베푸시고 치유의 은혜도 베푸셨습니다.
믿음이 주님을 감동하게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마태 15,21-28) 이야기에서 여인이 더러운 영으로 고통받는 딸의 치유를 위해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변은 의외로 부정적이고 심지어 모욕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자녀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 말에 주님은 여인의 믿음과 겸손에 감동하시며, 큰 소리로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네 복음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토록 칭찬하시는 것은 처음이라고 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하는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해 우리 순교자들을 바라보시면서 같은 감동의 말씀을 하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아, 한국의 순교자들아! 너희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믿음은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해줍니다. 내가 누구를 믿기 시작할 때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지요. 사랑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믿음이 올 수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는 먼저 믿음을 가지면서 사랑을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자연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주 창조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드러났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저지르는 죄를 꾸짖으시고 때로는 벌을 내리면서도, 인간을 변함없이 그리고 무한히 사랑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마침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지상에 보내심으로써 더욱 분명히 그리고 충만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활과 수난 및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 순교자들에겐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