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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신한열 수사가 진행하는 떼제 기도 하루 피정에 참가한 이웃종교 젊은이들이 용서를 주제로 나눔을 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수도교회. 서울 도심의 시끄러운 대로변을 벗어나 한적한 골목길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교회에서 아침부터 젊은이들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27년째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 사는 신한열(프란치스코) 수사가 방한해 진행한 이 날 ‘떼제 기도와 함께하는 하루 피정’에는 젊은이 100여 명이 참가해 교회를 ‘작은 떼제 마을’로 만들었다.
1940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떼제에서 시작한 떼제 기도는 짧고 단순한 성가를 반복해 부르는 찬양과 긴 침묵으로 묵상하는 기도 방식이다. 이날 피정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가톨릭ㆍ개신교ㆍ성공회 등 다양했다. 떼제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자 교파를 달리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프랑스 현지 떼제 공동체를 다녀오거나 지난해 대전에서 열린 ‘동아시아 젊은이 떼제 기도 모임’ 등을 다녀온 뒤 떼제 기도에 맛 들인 청년들, 페이스북 등 온라인과 입소문을 통해 알고 온 이들이었다. 신 수사는 5년째 방한 때마다 이처럼 젊은이들과 떼제기도 모임을 해오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만 놓고 보면 우리에게 힘든 요구인지 모르지만, 주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는 원수와 더욱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느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아침 기도 후 신 수사의 짤막한 강의가 이어졌다. 이날 주제는 ‘용서’. 신 수사는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린 예수님 모습처럼 이쪽과 저쪽의 손을 맞잡아 포용해주는 사람이 되자”면서 참가자들이 용서를 주제로 나눔과 묵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콘 성화와 촛불 앞에서 떼제 기도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후 삼삼오오 잔디밭과 계단 등에 자유롭게 둘러앉아 각자 자신만의 ‘용서 체험’을 나눴다. 청년들은 각기 종교 활동을 하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도 나눴다.
이날 젊은이들 사이에는 40~50대 목사와 성공회 사제도 함께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한 목사는 “저 또한 매일 말씀 안에 살아가지만, 아내와 사소한 다툼으로 용서하기 힘든 때가 있어 종종 회개하고자 노력한다”고 고백했고, 한 개신교 청년은 “자연을 보면서도 늘 주님의 존재를 인식하고자 기도한다”며 신앙관을 이야기했다.
피정은 점심시간 후 함께 성가를 부르며 절정을 이뤘다. 햇살이 드는 교회에서 참가자들은 찬양 후 다시 떼제 기도를 하며 묵상에 빠져들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젊은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언제든 와서 기도와 나눔, 찬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성공회 강하니(루치아) 사제는 “사제로서 젊은이들이 떼제 기도로 소통하고자 이처럼 한데 모이는 이유과 그 힘은 무엇일지 고민하기도 한다”면서 “자신의 종교 안에서만 아니라,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이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신 수사는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선 많을 때엔 6000명이 함께 떼제 기도를 하는 장관을 연출하곤 하는데, 한국에서도 특히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이처럼 기도를 통해 치유받고 소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