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본당 대림특강 (2) ‘자비의 해 : 자비로운 교회 교회가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조성풍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 조성풍 신부
갓 태어난 아기는 2시간마다 먹어야 하고 1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 아기는 절대로 살 수 없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느님 자비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 자비의 얼굴”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얼굴과 삶에서 자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자비는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하느님의 구체적인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신 하느님’ (1요한 4 16)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에페 2 4)께서 우리에게 와 있는 실재다. 자비를 알리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는 자비를 고백하고 선포할 때에 본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비가 창조주와 구세주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구세주의 자비의 샘에 가까이 가게 만들 때에 본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비의 관리자요 분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자비로우신 하느님」 13항).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한 자비를 전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내어준다(루카 6 37-38 참조).
자비를 육체적으로 실천하는 활동은 배고픈 이ㆍ목마른 이ㆍ헐벗은 이ㆍ나그네 된 이ㆍ병든 이ㆍ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힘이 돼 주는 것이다. 영적으로 실천하는 활동은 의심하는 이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며 모욕한 자를 용서해 주고 괴롭히는 자를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비의 얼굴이 되어 자비를 증거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나 자신이 구체적으로 입은 자비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의 신앙체험에 기초한 나의 성구를 정한다. 또 용서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한다.
나아가 나의 ‘결심’을 봉헌한다. 예컨대 매일 오후 3시에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하루 커피 한잔 줄이기나 금요일 한 끼 단식하기 등을 통해 자선을 실천함으로써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융합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는 지구라는 ‘공동의 집’의 한 식구로서 인간 존중과 평화 추구로 함께살이에 나서야 한다. 물질적 지원을 모색하고 서로를 자비롭게 대하는 것은 물론 교회 가르침을 근거로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다섯 대상’을 좀 더 사랑해야 한다. 다섯 대상은 △하느님 △나 자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세상 만물이다. 평신도 사도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교회가 삶의 자리에 현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평신도야말로 자비의 선교사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머리에서 마음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것보다 더 먼 것이 마음에서 손과 발까지의 거리다. 그만큼 실천이 어렵다. 또 그만큼 중요하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태 5 7).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