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루카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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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
자캐오는 돈 많은 세관장이었습니다.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던 로마 제국은 세금 징수권을 그 지역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돈 많은 세관장은 민족의 배신자이며, 하느님 백성을 많이 등친 사람입니다. 사랑과 우정을 나눌 친구도, 가족과 친척도, 이웃도 없이 그는 고독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많은 재물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모두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안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죽을 줄로 알고 덤빕니다. 그리고 주위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 술을 끊었더니 혼자 하는 등산과 영화 관람밖에 할 것이 없더랍니다. 그러니 술을 마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친구가 아닙니다. 모두 고독함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숨 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대에는 고독에 대해서 노래를 하면 누구나 공감하기에 인기가 많습니다.
자캐오는 더는 살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언뜻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오늘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용감하게 나서야 하겠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자캐오가 나무 위로 낑낑거리며 올라갔듯이, 우리도 용감하게 선택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러 나서야 합니다.
자캐오와 예수님의 눈길이 서로 마주쳤습니다. 번뜩였습니다. 깊은 고독과 갈망 속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이 살던 그는 예수님의 눈길 안에서 무한히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그 음성은 인간을 영원에서 찾아오신 사랑과 구원의 하느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그 따스한 눈길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내 과거를 돌아보는 그곳 그때마다 거기에서 너그러운 시선을 우리에게 던지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 그분이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같다고 할까요? 아버지의 그것과 같다고 할까요?
자캐오는 이미 기쁨에 가득 차서 순식간에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자기의 과거에서 자기를 억압하고 가두고 있던 자신의 내면 세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재산을 모두 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값진 대상을 만났으니까요.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이나 자동차 안에서, 집에서, 혼자 산길을 거닐며, 아니면 기도하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에 여념이 없던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대상을 만납니다. 피조물인 인간을 친구가 되어서 만나러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분과 하나가 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이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기쁨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캐오는 가난한 친구들을 되찾았습니다.
오늘 현대인도 고독에서 벗어나고, 특히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 기쁨을 누리고, 친구들을 되찾게 되는 것은 오늘 내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