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나는 예수고난회 총본부가 있는 로마에 파견돼 일했다. 그즈음 전세계 고난회 관구들의 회의가 열렸는데 한국 관구장이 내게 물었다. 1994년 말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 새로운 분야에서 일해 볼 마음이 없느냐고. 관구장은 한국의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일해볼 것을 내게 제안하였던 것이다.
그 전에 나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일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까지 에이즈 환자를 만나본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 병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즉시 앞으로 한국에서 있을지도 모를 새로운 사도직을 대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에이즈에 관한 모든 정보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에이즈와 관련한 여러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한편 1992년 말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유럽에서 가장 큰 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환자 수백명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처음으로 이 질병이 오늘날 인류에게 주는 도전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수많은 에이즈 관련 자료들이 이 질병이 야기하는 실제 아픔과 인간적 고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그곳에서 나를 안내했던 사람은 이 병으로 인해 두 명의 형제와 많은 친구들을 이미 잃었던 젊은이였다. 그는 비록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그야말로 살아있는 깊고 커다란 사랑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가 환자들에 대해 보여주었던 그 친절과 배려는 누가 보아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25년 이상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젊은이에게서 내가 배워야할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질병으로 쓰러진 희생자들에게는 극히 부분적 봉사이지만 내가 실제로 이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다시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나의 노력이란 비록 보잘것이 없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런던에서 나를 안내했던 그 젊은이가 내게 보여준 그 사랑을 항상 기억하게 된다. 그는 나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또 그분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