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가시’가 생겼다. 그래서 조금만 흥분하면 아프고, 무언가 해결하려고 생각해도 아프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겠다. 자칫 내 마음의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와 생채기를 낼 수도 있으니. 싫은 사람, 까다로운 사람, 귀찮게 하는 사람, 통하지 않는 사람은 가능한 피하고 도전이 되는 일, 새로운 일, 창의적인 일, 투신해야 하는 일도 조심하자. 무언가 열정을 갖고 뛰다 보면 사람들의 이런저런 반응에 마음속 가시가 요동을 친다. 가능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해주고 애써 일을 만들지만 않으면 ‘가시’는 안전하다.
그런데 상처를 주는 이 ‘가시’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어쩌다 내 마음속에 ‘가시’가 생겨 나를 꼼짝 못 하게 할까? 가만히 보니 한순간에 생겨난 상처는 아니다. 그동안 축적된 두려움, 분노, 슬픔, 혐오, 질투, 불안의 감정이 ‘가시’ 속에 달라붙어 조금만 건드려도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바로 명예와 인정을 먹고 사는 에고(Ego)의 자존심에서 왔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세상이 보는 ‘나’만을 보면서 진짜 나를 잃게 했다. 틈만 나면 ‘나를 보호해줘!’ ‘죽을 것 같아!’ ‘도망가!’ 하며 나를 조정한다. 자존심의 잣대는 오로지 ‘타인’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좋은 것’이 아니면 상처가 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는가에 따라 ‘가시’는 마음속을 헤집고 다닌다. 정말 아프다. 그래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타인은 적이다. 그렇다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들의 판단과 비난을 어쩌란 말인가. 그저 적당히 경계하고 거리를 두면 될까? 그런데 그럴수록 내면의 고립은 깊어지고 자존감은 바닥이다. 그렇다. 자존감이 없으니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이다.
‘자존심’은 타인이 보는 내가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보는 내가 소중하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자존감은 스스로 나를 인정한다. 자존심은 타인이 나에게 ‘좋은 것’만 해주기를 바라지만, 자존감은 나의 ‘좋고 나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자존심은 타인의 시선에 묶여 산만하고 분주하지만, 자존감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한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에너지를 소진하지만, 자존감은 오로지 자신의 잠재력에 신뢰를 두고 에너지의 흐름을 이용한다. 자존심은 내 안에 갇히지만, 자존감은 타인에게 열린다. 자존심은 내세울수록 열등해지지만, 자존감은 타인의 자존심까지 살려준다.
자존감이 충만한 사람은 오로지 자신이 감당할 몫에만 집중한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온갖 판단과 비난과 조롱 앞에서도 숨거나 피하지 않는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고통 그 자체를 외부 원인으로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이 돈 몇 푼에 자신을 팔아넘기고,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아 함께 있어 달라 부탁해도 모른 척 잠만 자고, 질질 끌려가는 위기의 상황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가버린 그들을 놓아버리고 그저 묵묵히 고통 한가운데를 걸어가신다. 군중들이 몰려와 침을 뱉고 조롱하고 뺨을 때리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때려도,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해도,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폭력이 아닌 오로지 자신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뜻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 고통의 ‘가시’는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뚫고 지나가야 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오로지 불의가 죽어 새롭게 영으로 소생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생명으로 건너가는 부활의 삶은 단지 ‘믿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제 더 이상 자존심이 만든 ‘가시’에 굴복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고통 한가운데를 당당히 걸어가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자. 그리하여 매일 매 순간 자존심에 죽고 자존감에 다시 사는 부활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성찰하기
1.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중들 속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해요.
2. 그리고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조롱하는 그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그 중앙으로 당당하게 헤치고 걸어갑니다.
3.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군중을 돌아봐요.
4. 마음속 가시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자존심 때문에 아프구나’ ‘인정받고 싶구나’ 하며 그냥 내어맡겨요.
5.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자존심이 죽은 그 자리에 자존감이 싹트고 있음을 상상해요.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믿으며 감사기도 드려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