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된장찌개. 살면서 가장 자주 먹은 음식이 아닐까 싶다. 직접 식사를 차릴 만큼의 나이를 먹으니 내가 차린 상에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지만 매번 먹는다고 질리지도 않아서 공동체에서 식탁 봉사를 할 때마다 척 하고 내놓는다. 평범하고 익숙해서 특별하게 여길 것 없는 일상의 음식에서 미사 때마다 빵의 모습을 하고 내게 오시는 주님을 발견한다.
작은 ‘빵 조각’이 예수님이라니. “아멘” 하고 당연하게 모시던 성체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본다.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을 택하신 것은 내가 언제든 부담 없이 그분을 받아먹을 수 있도록 한 당신의 배려일까? 그런데 왜 하필 당신 몸을 먹을 것으로 주시는 걸까? 최상위 포식자가 되실 수도 있는 분이 굳이 나의 먹이를 자처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손에 모시자마자 얼른 입속으로 자취를 감추셔야 하는 예수님의 뜻이 궁금했다.
“먹는 음식이 곧 자신이다.”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가 남긴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고 말씀하셨다. 나와 하나 되고자, 내 삶을 지탱하는 참된 생명의 원천이 되시고자 자기 자신을 나에게 먹이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귀 기울이고 그분께서 내어주시는 몸을 받아 모실 때마다 ‘그리스도는 내가 되고, 나는 그리스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천이며 정점’(「가톨릭교회 교리서」 1324)인 이유를 어렴풋이 직감한다.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여 먹듯이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처럼 그렇게 기적이 일어난다니.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미사를 드릴 때마다 하느님을 하느님이 아니라 빵 조각처럼 대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랑비에 옷이 젖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아이처럼 멀뚱멀뚱 주님을 바라본다. 이미 하느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적셔놓았다.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중) 거창하고 화려한 것 대신에 지극히 소박한 형상을 취하신 주님의 겸손한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마음의 눈을 뜨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봄비처럼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을 느낀다.
오푸스 데이의 창시자인 성 호세 마리아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살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느낌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그들 역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소박한 기적에 눈을 뜬 자로서 그리스도로 살아가고자 오늘도 당신의 마음을 가르쳐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