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은퇴 후 많은 이들이 상실감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존재만으로 충분히 핼복할 수 있기에 스스로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들 필요하다. CNS 자료사진 |
“베이비붐 세대, 700만 은퇴 쓰나미 온다.”
언젠가 방송에 나온 뉴스 머리기사다. 2020년까지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그동안 되풀이되어 듣고 싶지 않았던 문제였지만 요즘에는 유난히 더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나 역시 은퇴 나이에 성큼 다가선 탓일까. 인정받았던 지위와 역할을 하루아침에 내려놓아야 하는 이 냉혹한 현실에서 오는 상실감과 공허함을 떨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날 평소 가까이 지냈던 S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는 30여 년간 한 직장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놀라운 성과를 내었다. 그래서 많은 직장 후배들이 그를 ‘본보기’로 삼을 정도였다. 그런 그도 하루아침에 은퇴해야 했다. 전화로 들려온 S의 목소리는 예상한 대로 힘이 없었다.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하는 나의 순진한 말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평생 한 직장에서 일만 죽으라고 하면서 살았어요. 이제 와서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니 도통 알 수가 없네요. 내가 살아온 인생은 한 조직에 속해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산 것밖에 없던 거 같아요.”
그가 은퇴 후 얼마나 상실감에 시달리며 지내 왔는지를 짐작게 해주는 말이었다. 사실 S는 한동안 자신을 추스르려고 부단히도 애쓰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다행히도 공허하고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깊은 통찰을 이뤄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친했다고 생각하고 만났던 사람들은 거래의 대상이었어요. ‘일’ 때문에 만났으니까요.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봤지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유를 이제 알겠더라고요. 가난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 것이 너무 싫어서 기억을 아예 지워 버린 거지요. 가난해서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그 자존감을 주워담기 위해 온갖 허세를 부리고 ‘일’로 인정받으려 했다는 것을 60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네요.”
울먹이며 진심을 토해내는 S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직도 나에게는 깊은 감동과 먹먹한 울림으로 남아있다. 그러면서 수도자인 나 역시 분명 일을 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부터라도 ‘일’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 설계를 하지 않으면 불행할 것 같은 불안감이 스쳤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기관을 책임지고 있고 강연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것과 이별하고도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만나는 이 수많은 사람이 거래의 대상이 아닌 친교의 대상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사회적 통로가 단절되어도, 그저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까? 아빌라의 데레사처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성과에 쫓겨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느님만으로 충분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를 외면하고 살아왔을 나를 돌아본다. 열심히 일하면서 대가나 보상으로 맞바꿈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을 나를 반성도 해본다. 그리고 ‘생계’가 아닌 ‘삶’을, ‘역할’이 아닌 ‘존재’로 돌아서는 데 마음을 써야겠다. 힘이 있어 일이 있어 존중받았던 과거의 나와 과감하게 이별하자. 그래 매일 나에게 해 줄 말이 있다. 불편해도 평범해도 그저 ‘나’여서 충분히 행복하다고. 전화를 끊으면서 한 S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내려놓음, 그것이 전부죠.”
성찰하기
1. 성과를 위한 ‘해야 한다’보다 존재를 일깨워주는 ‘할 수 있다’고 희망해요.
2. 과거로 도망가지 않아요. ‘왕년에는…’보다 ‘지금은’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줘요.
3. 모든 해결책은 지금 여기에 있어요.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지금’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