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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태석 신부와 한 달 함께 지냈던 추억 책으로 엮은 박진홍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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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은 ‘톤즈를 웃게 한 사람’입니다. 아프리카는, 남수단 톤즈는 슬퍼서 울고 있는 땅이지만, 그가 있어서 슬프지 않습니다.”

올해 10주기를 맞는 고(故) 이태석 신부(살레시오회)와의 ‘한 달 살기’가 책으로 나왔다.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 주임 박진홍 신부가 2006년 겨울,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와 한 달을 지낸 기억과 기록을 모아서 「톤즈를 웃게 한 사람」(바오로딸)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두 신부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졌다. 박 신부는 대전교구 세종 전의성당에서, 당시 군의관으로 군복무 중이던 이태석 신부를 처음 만난다. 중3때부터 ‘아리랑 열두고개’라는 노래를 애창곡으로 부르고 다녔던 박 신부는 그 노래가 이 신부의 곡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서품을 받고 2004년부터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회에서 거주하며 서울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던 박 신부는 2006년 이 신부의 초대로 톤즈에서 한 달 동안 생활했다. 그리고 다음(Daum) 카페에 톤즈에서 지낸 이야기들을, 온갖 농담과 장난, 이모티콘을 담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이 신부의 암 선고 후 더 이상 글을 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8년, 남수단 출신 유학생 토마스 타반 아콧이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던 날 이 신부의 동상 앞에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태석 신부님은 선교사였습니다. 제가 아는 선교사는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의견을 달리 했던 주제가 있다. 이 신부는 아프리카, 톤즈가 슬프다고 주장했고, 박 신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발목이 부러진 아이가 5일 동안 100㎞를 걸어서 진료소에 왔어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다치는데, 병원을 찾아오지 않아서 평생 불구가 돼 앉은뱅이가 되거나 기어다닌다고 합니다.”

박 신부가 ‘슬픈 톤즈’를 부정한 이유는 바로, 이태석 신부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100㎞를 부러진 발목으로 걸어왔다는 것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오면 이태석 신부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신부님은 다친 다리로 5일을 걸어온 아이를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지만, 저는 그 아이가 5일을 굶어가며 찾아오는 신부님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박 신부는 아직도 톤즈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는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절하지만 감동적인, 소소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일화와 느낌들이 가득하다. 곰팡이 핀 떡으로 만든 떡볶이, 수많은 별똥별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이 반딧불이었다는 각성, 부족 간의 전쟁, 처음으로 악기를 손에 든 아이들의 음악적 천재성….

2020년은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다. 박 신부는 10주기의 희망을 요약했다.

“이태석 신부를 아는 모든 이들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길 바랍니다. 남수단에는 이제 토마스를 비롯한 제2, 제3의 이태석 신부가 있을 테니, 이제 남수단만 보지 말고 선교사들이 혼신을 다하는 온 세상 곳곳을 두루 살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와 같이 우리도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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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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