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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사순특강] (2) 은총의 고해성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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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우리가 범한 모든 허물과 범죄를 다 헤아리시고 기억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끝장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은 우리 죄를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살피시고 그 죄들을 차곡차곡 기억해두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다. 그분은 법과 정의의 하느님이기보다는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이시다. 우리 죄를 살피시지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 죄를 살피시지 않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죄를 잊어버리신다. 우리가 악행을 범했을 때 죄를 고백하면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그 죄악을 잊어버리신다. 많은 신자들이 지난날 지은 죄와 허물을 움켜쥐고서 계속 슬퍼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몇번이고 반복해서 같은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보면서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무조건적 용서를 의심하는 것이다.

 은총을 가리키는 라틴말 gratia의 본래 의미는 공짜 이다. 하느님 사랑은 공짜로 주어진다. 우리가 하느님을 걷어차도 그분을 무시해도 그분을 거절해도 그분을 경멸해도 그분에게 반항해도 하느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 죄악이 하느님 사랑을 감할 수 없고 우리 선이 그분 사랑을 증가시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은총이다.
 우리 중에 아직도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 그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가. 죄인이라서? 죄인이기에 구원받는 것이다. 예수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
 하느님 자비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자리가 고해성사이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언제든지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돌아가 하느님 용서를 체험할 수 있다. 참회 마음이 가득 담긴 고해성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고 하느님과 더 가까운 인격적 관계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무엇 때문에 고해성사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가? 죄를 깊이 있게 성찰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말로 성찰할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고해성사를 보려면 먼저 깊은 성찰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은혜로운 고해성사가 되려면 십계명은 물론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새 계명 에 따라 자기 삶을 성찰해야 한다. 십계명은 죄에다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새 계명 사랑의 계명은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해성사에서 죄의 결과들을 고백하지만 성찰할 때는 주님이란 표적을 잃어버린 모든 죄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 시선이 머물러야 할 유일한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두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부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하는 구체적 행위들은 결국 부작용을 낳고 잘못될 수밖에 없다.

 또 성찰할 때 죄의 뿌리를 보아야 한다. 자신이 지은 죄는 물론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스런 태도 죄의 뿌리까지 하느님께 갖다 바칠 때 그 사람은 고해성사의 은총으로 죄를 용서받고 죄의 뿌리에서 치유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죄악보다 하느님의 용서를 먼저 보아야 한다. 자기 죄와 허물에 지나치게 주목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용서에 더 주목하면서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실제 고해성사에서는 정말 고백해야 할 죄와 습관적이고 반복되는 죄를 고백해야 한다.
 정말 고백해야 할 죄는 호두알 같은 죄다. 우리 영혼을 어지럽히는 많은 문제들이 오랜 시간 우리 내면 안에서 적당히 타협되고 정당화되어서 숨겨져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부숴지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바로 호두알 같은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길 원한다. 죄는 그 죄를 개방하는 순간 파괴력을 상실한다. 우리가 정말로 고백하기 어려운 죄를 고백하고 나서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맛보는 것은 고백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죄의 파괴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심하라. 하느님은 우리 죄악에 놀라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 약함과 죄스런 경향을 다 알고 계신다. 습관적 죄를 고백하려 할 때 바로 그 죄악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된다. 과거에 이미 용서받은 사실을 새삼 떠올리고 마음을 끓이거나 미래에 다시 넘어질 것이라 염려하면서 겁먹을 필요가 없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고백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기계적이요 형식적 행위처럼 보일지 모르나 고백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보면 영적 성장을 향한 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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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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