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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 받고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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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승수 신부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합니다.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그분을 ‘죽은 사람’ 취급하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볼 일’이 끝나면 그분과의 관계를 끊고 제멋대로 살 거라고 대놓고 선언한 겁니다. 너처럼 불효막심한 놈은 호적에서 파버릴 거라고 노발대발해도 모자랄 판에, 비유 속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재산을 내어줍니다. 하지만 아직 그 큰 재산을 제대로 관리할 깜냥을 갖추지 못했던 작은아들은 그 소중한 유산을 금세 유흥으로 탕진하고는 가축이 먹는 사료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아버지의 품이 자신을 답답하게 구속하는 ‘감옥’이라고 생각해 도망쳤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편안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버지라는 든든한 울타리 덕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분 곁에서 그분과 함께 사는 것만이 자신이 ‘살 길’이라 믿은 것이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멀리서 발견한 아버지는 그의 축 처지고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을 가엾이 여깁니다. 작은아들의 우려와 달리 아버지는 한순간도 그를 미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한순간도 그를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기에 작은아들을 보자마자 버선발로 달려나가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준 것은 그가 자기 아들임을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죄송스러운 마음에 스스로 종이 되고자 하는 그를 여전히 아들로 대한 겁니다.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났던 ‘죄인 아들’이 아버지의 용서와 자비 덕분에 그분께 ‘사랑받는 아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는 작은아들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너무나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죄로 인해 끊어졌던 부자 관계가 믿음과 회개, 사랑과 자비로 다시 이어져 그들 모두가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 기쁨의 파스카를 기념하고자 흥겨운 잔치를 벌입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들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아버지의 귀한 재산을 들어먹은 저 못된 ‘죄인’을 당장 내쫓아도 시원찮은 마당에, 당연하다는 듯 그를 다시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잔치까지 열어주는 아버지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여겨진 겁니다. 그건 동생만 감싸고도는 ‘편애’이자 아버지 곁을 지키며 그분을 위해 종처럼 일한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였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집 밖에 서서 씩씩대고 있었지요. 동생은 엄연히 자기 ‘가족’인데 그의 무사귀환을 기념하여 잔치를 여는 것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일까요?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억울함 때문입니다. 몸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그도 동생처럼 아버지를 떠난 삶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생처럼 자기 몫을 요구할 용기가 없어서, 아버지께 혼날까 봐 두려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견뎠을 뿐이지요.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들로 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 따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방황 중에 자기 몫을 모두 탕진한 작은아들보다 자기 몫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큰아들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큰아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를 닮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넘치도록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지만, 우리는 그 사랑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이용해 자기 욕망을 이루려 할 뿐, 내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지시는 그분 자비의 손길을 답답한 억압과 구속으로 여겨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주님과 함께 참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받고 누리는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아야겠지요. 지금 나는 하느님의 자녀임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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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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