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독자마당] 외할머니의 사랑

고재덕(안드레아, 서울 세종로본당)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코로나와 오미크론으로 지구촌이공포에 떨고 있다. 방역 때문에 통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흥미진진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유년 시절, 여름방학 때 외가에 가곤 했다. 외가 마을은 황룡강 상류로, 마을 앞과 뒤로 강이 흐르고 북쪽엔 편백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축령산이 있는데, 그 기슭에 외가가 있었다. 과제물을 잔뜩 짊어지고 가지만, 사방이 자연학습장이므로 책을 던져두고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녔다. 가재, 피라미, 물방개, 장수풍뎅이 등은나의 친구였다. 호기심과 흥분의 연속이므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산에 가면 머루, 오디, 다래,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뒷산은 눈이 오면 미끄럼 타기 좋아 나무로 차를 만들어 나무 사이를 신바람 나게 내려왔다.

어느 여름날, 간식을 달라고 외할머니에게 칭얼댔다. 키 작은 외할머니는 대청마루 시렁의 광주리를 내리려 했는데 너무 무거웠다. 내가 부축해 겨우 광주리를 마루에 내려놨다. 아뿔싸~ 광주리 홍시 위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빨리 마당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겁이 나 마당으로 뛰어갔다. 외할머니는 대청 뒷문을 열어놓고 명반과 머리카락을 태우며, “업주님, 업주님! 조용히 대밭으로 가세요” 하면서 비셨다. 드디어 구렁이는 대밭으로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구렁이는 인간의 말을 알아들었다. 외할머니는 행주로 홍시를 닦은 후 먹으라고 주셨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머뭇거렸다. 외할머니는대신 곶감을 주셨다.

여름방학이 끝나자 외할머니와 고창 우리 집으로 갔다. 장성 백양사역에서 출발, 정읍 입암역까지 가는 짧은 거리였다. 입암역에서 나는 무사히 기차에서 먼저 내렸지만 승객에 밀려 외할머니는 발판까지 왔는데 발이 홈에 닿지 못했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려고 서서히 움직였다. 식은땀이 났다. “재덕아, 나를붙잡아라.” 외쳤지만 어린 내 체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저씨, 우리 할머니 좀 잡아 주세요.” 어렵게 하차한 후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솔밭 길을 따라 우리 집에 왔다. 외할머니는 구렁이 사건과 기차 입암역 사건은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여름밤 모깃불 피워놓고 외할머니는 “저 별은 재덕이 별, 저 별은 내 별” 하시며 자장가를 불러주셨으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별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시리라. 외할머니께서는 남을 많이 도와주셨으므로 충분히 천국에 가셨으리라. 어리광부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 나이 외할머니 나이를 훨씬 넘었으니 죽기 전에 외할머니처럼 선행을 해야겠다. 가재 잡던 철길 계곡, 횃불 들고 가물치 잡던 샛강, 머루와 다래 따 먹었던 뒷산은 여전한데 외할머니는 보이지 않으니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풀잎의 이슬이다. 언젠가 나도 외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리라. 오늘날 내가 행복한 것은 외할머니의 기도 덕분이라 믿고 감사드리며, 외할머니의 명복을 빌어본다. 올 한식날에는 외할머니 산소를 꼭 찾아 뵈어야겠다.



※독자마당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지 5매 분량입니다.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3-2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8. 24

히브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