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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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야훼 이레

김병진 신부(글라렛 원통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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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은 명절이면 초라함과 서러움을 더 느낀다. 원통수도원 재가복지센터에서 함께 하는 인제군내 160여 세대 노인분들 장애우들 결손가정 어린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민통선 지역인 서화리 내린천 현리 소양호 부평리 내설악 용대리 등 강원도 첩첩산중 골짜기에서 외롭게 홀로 살아가는 분들이다. 명절 때면 어떻게 이들의 쓸쓸함과 서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다.

 지난 설에는 떡국을 끓여 먹을 수 있게 가래떡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대상자에게 다 나누어 주려면 적어도 쌀 한 가마니가 필요하다. 요즘은 쌀 한 가마니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진 건 없지만 믿음이 있기에 그래도 용감해진다. 든든한 빽(?)이 있기에 보통 그냥 기다린다.
  따르릉. 양평 마리아 자매님 전화다. 신부님 설에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 떡국 끓여 드시게 수산나와 함께 쌀 세 말로 가래떡을 만들어 썰어놓겠습니다. 서울 갔다 오시는 길에 들러 가져 가시겠어요?

 아니 이럴 수가. 어떻게 아셨을까? 어려운 고민을 해결한 기쁨에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놀란 것은 며칠 후 양평 마리아 자매님 댁에 들렀을 때 실제로 자매님이 준비한 떡국 양은 원래 약속한 세 말이 아니라 우리가 계획한 양인 한 가마니 쌀로 가래떡을 만들어 썰어 놓은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루치아와 체칠리아가 함께 해 좀 넉넉하게 준비했단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대신에 야훼께서 준비해 주신 가시덤불에 걸린 어린양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성조처럼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믿음의 힘과 뿌듯한 기쁨을 느낀다.

  야훼 이레. 꼭 필요한 것은 야훼 주님께서 마련해 주심을 다시 한번 깊이 체험하기에 비록 갖추어지지 않은 초라하고 가난한 삶이지만 풍요로움과 희망을 느낀다.

 설맞이 떡국 가래떡을 받아들고 기뻐하시는 소양호 부평리 나환자 부부 신풍리 장상수 할아버지 내린천 골짜기에 위치한 진동 장은봉 할아버지 현리 김운녀 할머니 방동 약수터 김현태 할아버지 현리 손금옥 할머니와 은범이와 은하 가족 천도리 상철이와 상권이…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난한 이웃들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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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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