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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상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로 50일간의 부활
시기가 끝나고 내일부터는 연중 시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연중 시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시며 숨을 불어넣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상당히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장에서 “주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라고
표현하는 데에서도 보듯이, “성령을 받아라.” 하시며 숨을 불어넣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성령을 통해 제자들을 온전히 새롭게 창조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 중 첫째 독서 후 화답송에서도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하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사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난 순간, 우리는 이미 새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하신 말씀처럼,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예수님의
오늘 말씀 중 저는 두 가지 표현에 대해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건네시는 인사는 거의 항상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인사하시는 것은 평화가 그저 싸움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사이에 서로 평화가 없다면,
먼저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불어넣으시면서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보듯이, 죄를 지은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을 등지고 피하게 됩니다. 이렇듯 죄는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기에, 죄로 인해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죄의 용서’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 있는 상태, 곧 참평화의 상태로 우리를 다시금 되돌리는 길을
사도들에게 맡기시는 겁니다. 참회성사, 고해성사라고도 하는 화해성사를 교회에
맡기신 하느님의 뜻은,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부족한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마련해 주시고, 다시금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은총의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 시기를 끝맺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겁 많던 제자들이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나 죽음도 두려워 않는 사도로 거듭났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나 힘차게 연중 시기를 다시 출발합시다!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서울대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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