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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이민자’ 대통령 표창 받은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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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한센인의 대모’ 엠마 프라이싱거 여사(Emma Freisinger·90·릴리회 명예회장)가 한국에 머물기로 약속한 기간은 2년이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한센인들을 보며 여사는 “이분들과 평생 함께 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줘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끝까지 이분들과 함께 여기에 있겠습니다.” 2년은 61년이 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인의 날(5월 20일)을 맞아 ‘올해의 이민자’로 프라이싱거 여사를 선정,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고령의 몸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여사를 위해 볼프강 앙거홀처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는 6월 27일 오전 10시 프라이싱거 여사가 지내는 대구 파티마홈을 찾아 표창을 전달했다. 대구대교구 총대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와 릴리회 이옥분(우달리까) 회장 등 일행도 함께 방문해 기쁨을 나눴다.

“이 상은 제가 받은 것이 아니라 저와 함께 사업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격려하는 상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프라이싱거 여사는 한국의 한센인 구제 사업을 위해 1961년 당시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요한·1911~1987)의 초청으로 입국했다. 그때만 해도 잘못된 인식으로 한센인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돼 살아야 했다.

프라이싱거 여사는 경북 고령과 의성 등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돌봤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안이 돼 줬다. 프라이싱거 여사는 “저는 그저 간호사일 뿐인데 그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정말 기뻤다”며 “주님께서 저와 함께하신 덕분”이라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

몸 전체가 썩어 들어가 손과 발을 잃는 환자들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여사는 한센인들을 치료하는 전문병원 건립에 나섰다. 손으로 쓴 계획서만 들고 무작정 고향 오스트리아로 간 여사는 ‘오스트리아부인회’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963년 대구 읍내동에 가톨릭피부과의원이 세워졌다. 여사의 노력 덕분에 한센인들은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고 떳떳하게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여사는 1977~2007년 한센인 후원단체인 릴리회 회장을 역임했다. 릴리회는 창설자 김광자 여사(안젤라·1981년 선종)가 1970년 당시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를 보고 한센인을 돕기로 결심하면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만든 단체다. 프라이싱거 여사는 릴리회를 통해 한센인들의 재활치료와 자립, 정착 등을 지원했다. 현재 릴리회는 아프리카 등 해외의 한센인 치료사업에까지 나서고 있다.

프라이싱거 여사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모든 걸 바쳤던 삶을 기억하며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을 알고 그대로 따라 살면 분명히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의 길은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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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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