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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희 신부 |
어떤 환자분과 몇 달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늘 고민하시고 이야기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대화할 때면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배우자와 자녀에 관한 이야기부터 자기 삶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말씀을 듣다 보면 그분의 감정과 내면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적인 정을 깊게 느꼈습니다.
어느새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도 물도 마시지 못하였습니다. 가끔 수건에 물을 적셔 메마른 입술에 묻혀드리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환자의 의식은 또렷하였지만, 진통제를 맞아야만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 이야기를 나누기 점점 힘들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옆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함께 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임종을 몇 주 앞두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가기 전 잠시 만났습니다. 환자분은 어렵게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신부님, 수박이 먹고 싶어요.”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그 말이 함축하는 솔직한 무엇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주셨습니다. 말 한마디 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힘든 와중에도 어렵게 글을 쓰신 것입니다. 편지에는 진솔한 마음들이 담겨 있었고, 저에게 당부하신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옮겨가신 병원은 멀리 있었지만, 직접 가서 그분의 임종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고는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의 지인께 임종 전에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행히 임종 전에 지인께서 전화로 알려주셨고, 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고 며칠 후 수박을 먹게 되었습니다. 수박을 한입 베어 물었지만,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음만 나왔습니다. 고인의 마음과 함께했던 교감들이 떠올라 그랬나 봅니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요즘 같을 때면, 그분과 대화했던 빛이 비치는 창가의 자리와 수박 한입이 가끔 떠오릅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원목실장 김문희 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병원사목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