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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수 신부 |
외출하고 돌아온 저에게 수녀님이 급히 보자고 하십니다. 어떤 젊은 어머님이 어린 장애 자녀를 맡기러 왔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중한 암에 걸렸고,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빈자리가 없어 되돌아갔다는 사연을 전하는 수녀님은 울고 계십니다. 저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 같았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누구도 되돌려 보내지 않고 모든 이를 치유시켰던 그분의 기적을 행하는 건 저에게는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구에서 직영하는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에 있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잘 지어졌다는 소문은 소문을 낳고,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부모님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솔직히 피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처지가 어려운 분의 소식을 들으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에서 아쉬움이 많았지만 특수사목을 끝내고 저는 본당신부로 돌아왔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기에 남다른 관심을 사회복지분과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달장애인 어머님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분들은 또 다른 시설을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기도가 필요했고 몇 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어머님들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최종 결심을 한 이유는 과거에 저를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익명의 어머님이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찾아온 어머님들도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더 이상 침묵한다는 것은 직무유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교님께 저의 결심을 알려드렸습니다.
“주교님, 제가 가야 할 길은 본당신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주교님은 저의 결심을 매우 존중해 주셨고 어머님들의 뜻이 잘 이뤄지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기수(수원교구 둘다섯해누리 시설장,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