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감염증으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살이’(함께
살아가는 삶)의 마음을 지니고 실천해야 함을 더욱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전개되는 ‘함께 걷는 여정인 시노드’의 정신과 여정은 우리에게 이러한 지향으로
살아갈 것을 더욱 재촉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일치를 본받아 교회 공동체가
‘친교’를 이루고,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물로 서로를 섬기며 ‘참여’하는 가운데,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명(선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모른다고 선언하거나 하느님을 외면하려는 세상의 흐름 안에서
‘친교와 참여와 선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열정 때문에 순교조차 마다치
않은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삶을
약속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2마카 7,9)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와 흉년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가운데 굶어 죽는 사람 없이 가난하지만 기쁜 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평신도와 성직자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외교인들로부터 ‘천주교인은 남다르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런 감동 어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표현이 있습니다. ‘신신우신’입니다. ‘신신우신’은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을 축약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이렇게도 풀이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자님 신자님 우리 신자님.’ 목자는 자신이 섬기는 양들을
‘신자님 신자님 우리 신자님’으로, 양들은 자신들의 목자를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으로 부르며 친교를 이루는 것이지요. ‘우리’라는 표현은 관계가 깊고,
소중히 여길 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에게 ‘우리’라는 마음을
지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삶에 함께하도록
이웃을 초대하고, 또 이웃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고,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루카 20,38)이시기에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나눕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와 세상 안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실현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그들을 온갖 어려움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조성풍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