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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미애 수녀 |
신체적, 정서적, 성적 그리고 영적인 학대를 가하는 대부분 사람은 자신보다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자신보다 힘이 있는 사람보다는 더 약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장 사랑해야 할 부모가 자녀를 학대할 때, 상처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신뢰해야 할 관계가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1998년 16살 경아(가명)는 맨몸으로 집을 나와서 나의 사목 현장인 가출 소녀들의 쉼터에서 지냈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불혹이 된 요즘에도 그녀는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 그녀는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노래방 일자리마저 잃게 되었을 때,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날 마지막 문자를 나에게 넣었다. “수녀님,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2020년 7월 13일 문자를 받은 나는 부산에 사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원룸은 쓰레기와 빈 술병으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씻었다는 그녀의 몸에서는 곰팡내가 진동했다. 함께 점심을 먹고, 그동안의 일들을 듣고,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긴급재난 지원금도 신청했다. 그리고 마대와 쓰레기봉투를 받아서 건네주고, 정리하고 춘천으로 이사하자고 했다.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친부의 학대로 인한 상처는 너무나 깊어서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가장 사랑해야 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했고,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졌던 그녀는 아주 천천히 다시 추스르며 일어서고 있다. 이런 상처 받은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일,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배미애 수녀(마리진, 착한목자 대외협력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