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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나는 행복한 순례자

이영일 수녀(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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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특히 하느님을 위해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부산교구에서 본당 수녀로 있을 때, 월요일이면 오륜대성지를 찾아가곤 했다.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는 순례 때마다 새로운 영적인 힘을 얻었다. 그때부터 성지 지도를 챙겨 순례를 시작했다. 대중교통으로 순례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보람도 컸다.
 

그렇게 성지 120곳 순례를 마쳤을 때쯤 가톨릭평화신문에 축복장 수여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이후 주교회의 측에 연락했다. “지도를 보고 순례를 모두 마쳤어요.” 담당자는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성지순례 책자에 수록된 성지 111곳과 나의 지도를 비교해 보라고 일러줬다. 대조해보니 가지 못한 성지가 10군데 됐다.
 

휴가를 내고 나머지 성지까지 곧장 순례를 마쳤다. 그리고 2014년 9월 당시 주교회의 성지순례순례사목소위원회 위원장 옥현진 주교님께 축복장을 받았다. 손때묻은 성지 지도도 함께 제출했다. 국내 여자 수도자 가운데 전국 성지 순례 완주자로 최초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몇 개월 뒤 다시 두 번째 성지순례를 시작하게 됐다. 아들과 손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길 원했던 자매님 한 분이 내게 성지순례 동행을 청했던 것이다. 이후 그 자매님 본당 신자들과 나는 매달 ‘봉고차 순례’를 했다. 이름도 ‘행복한 순례팀’. 나는 순례하는 동안 성지 해설자가 됐다. 모두 좋아했다. 그런데 이를 질투라도 하듯 유행병 ‘사스’가 덮쳤다.
 

사스가 유행하고 한참 뒤 코로나19 대유행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나홀로 순례는 계속됐다.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2021년 서울대교구 지역의 순례 때에는 11군데 성지를 다니면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순례하면서 한 번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
 

두 차례의 순례 기간을 합치면 30년이 넘는다. 그 사이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너무 많이 체험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천사 같은 교우들, 오지의 성지를 기쁘게 동행해준 이들, 교통비를 지원해준 신자들, 시간을 배려해준 수녀원 공동체에 모두 감사드린다.
 

순례 중 만난 한 신부님께서는 “성지순례는 돈과 시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은총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해주셨다. 늘 찾아갈 성지가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가슴 설레게 했다.
 

순례를 하면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순례자요, 수도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죽림굴성지를 끝으로 2차 완주를 마쳤다. 아는 신부님께서 “이제는 인생 순례를 하셔요”라며 격려해주셨다.
 

태어남이 죽음이요, 죽음이 태어남인 것이 인생 순례이다. 주님 안에 죽고, 주님 안에서 영원히 태어나는 것이 순례다. 이젠 천상 고향을 향해 매일 충실히 살아가는 인생 순례에 매진할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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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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