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등과 분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갈등을 갈등으로만 보는게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할 책무가 있죠. 평화운동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안내자의 역할을 하길 바라며 이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이선중(로마나) 수녀는 지난 2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에 나타난 평화 사상과 한국천주교회의 평화운동」 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 2020년 개설된 평화학 전공으로 처음 발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욱이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민족화해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오랫동안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평화운동을 해온 이 수녀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 발표했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평화에 대해 그 상태만 보고 진단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해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평화학을 공부해야 하는 중요성을 피력하신 것이죠. 마침 가톨릭대학교에서 평화학이 개설된다는 소식이 들렸고 평화활동을 구체화하기 위한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고자 저희 수녀회에서 제가 추천을 받아 공부하게 됐습니다.”
이 수녀가 한국천주교회 평화운동을 정리하기에 앞서 주목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사상이었다. 이 수녀는 교황의 평화사상을 바탕으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평화사도직 활동을 풀어냈다.
이 수녀는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화 사명으로서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형제애’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했고,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로 하느님 구원의 주도성, 공동체성, 보편성을 제시하고 있다”며 “또한 전 세계가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실재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라는 네 가지 원칙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평화증진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념적·정치적으로 점점 양분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느님 구원의 주도성, 공동체성, 보편성’이라는 게 이 수녀의 설명이다. 이는 비단 남한과 북한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선중 수녀는 “평화를 이뤄가는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이라는 하느님 구원의 주도성, 평화는 특정 개인이 아닌 공감과 합의가 요청된다는 공동체성, 평화를 실천함에 있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성은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이 수녀는 주변에서 “너그러워졌다”는 말을 부쩍 많이 듣게 됐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실천코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 수녀는 평화는 이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작게는 수도회 공동체 안에서도 나와 뜻이 다르면 배제하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교황님의 평화사상을 공부하면서 내 것을 내려놓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평화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자 노력했죠. 평화는 이렇게 작은 변화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첨예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평화를 증진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제 논문을 보면서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