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요한 11, 4)
한강 변 수변, 마른 풀들이 덤불 더미로 여기저기 쌓여있습니다. 겨울 동안, 참새, 멧비둘기, 황조롱이, 온갖 새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시베리아로 떠나고 있는 기러기들의 안식처였습니다. 새들이 자신들의 온기로 덤불 더미를 데웠을까요? 황량해 보이는 그곳에도 봄빛이 어른거립니다. 사순 시기,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큰 사랑과 측은지심으로 불쌍한 이들을 보듬어 안은 사순 시기였을까요?
1. 라자로를 살려내신 힘, 아버지의 커다란 사랑과 측은지심
라자로는 베타니아의 두 자매의 오빠입니다. 주님은 그 집안과 남다른 친분이 있었고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복음은 여러 차례 이점을 밝힙니다.(3절. 5절. ; 루카 10,38) 라자로가 중병을 앓는다는 전갈을 받지만, 주님은 바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만 라자로는 죽고 맙니다. 라자로의 병은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당신에게도 그리되리라 확신하십니다. 놀라운 믿음이고 통찰력입니다.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이 사람들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42~43절)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라자로의 부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벌써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 라자로를 일으키는 분이 아버지이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아버지의 커다란 사랑과 측은지심이 라자로를 살려내는 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눈물을 흘리시고 슬퍼하십니다. 가족들이 슬퍼하고 사람들이 울자 주님도 마음이 북받치시어 눈물을 흘리셨다고 복음은 세 번이나 강조합니다. (33절. 35절. 38절) 이제 곧 라자로는 살아날 것이고, 영광스러운 사건이 될 터인데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공감 능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매몰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면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상황에 대한 공감입니다. 루카 7장의 나인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겠습니다.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사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때같은 아들이 죽었습니다. 상여를 따라 나오는데 거의 실신 상태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부축해서 겨우 발걸음을 뗍니다. 애통해하는 과부를 보시고 그녀의 아픔에 하나가 되십니다. 상여를 멈추게 해 젊은이를 살려 어머니에게 돌려보내십니다. 주님이 라자로를 살려내시는 연유도 마찬가집니다.
2. 측은지심의 반대쪽에 있는 기쁨
죽은 이의 생환은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꼭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낸 목자의 기쁨도 있습니다. 그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광야에 놓아둔 채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당연히 찾게 될 것이고 찾게 되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4-6 참조) 하고 말합니다. 효율과 숫자에 민감한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목자의 기쁨에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 나간 아들의 귀가에도 아버지는 이렇게 기쁨을 드러냅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장 참조)
라자로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생환에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노하며 예수님을 죽이려 듭니다. 권력에 대한 도전이요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먼 얘기도 아닙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에 우리는 경악했습니다. 국민 모두 깊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책임져야 할 이들은 뻔뻔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권력 손상만을 염려합니다. 인간성 상실입니다. 죽은 자들입니다.
측은지심과 기뻐하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 밑바닥엔 공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라자로가 자고 있다고 말합니다.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는 거나 죽은 거나 같습니다. 잠자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그 마음은 죽은 마음입니다. 주님은 큰소리로 외칩니다. “○○○야, 이리 나와라.” 라자로를 살려내시면서 우리의 죽은 마음을 살려내십니다.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