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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배려가 담긴 호칭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생활] (14) 내가 불러 줄 그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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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아름다운 꽃의 향기에 가슴이 설렙니다. 겨울 내내 외로이 서 있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온갖 색깔로 마술을 부리듯 노란 산수유나 새색시 얼굴처럼 고운 분홍색 진달래가 피어납니다. 아기의 함박웃음처럼 하얀 목련화가 피는 봄의 계절이 오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부르는 호칭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수녀님! 하고 부르면 스스로 수도자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관장님! 하고 부르면 기관에서의 역할과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박진리님! 하고 부를 때면 시민으로서의 한 개인이 된 느낌이 들고, 진리야! 하고 부르는 사람에게는 저의 부족함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이해해 줄 것만 같은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

부활 때마다 낭독되는 복음 중에 긴장감과 벅찬 감정이 이입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채 가시기 전에 빈 무덤 앞에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을 것이라고 느꼈을 마리아 막달레나의 황망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부릅니다. 마리아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던 유일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마리아가 얼마나 놀랍고, 두렵고, 떨렸을지 전율이 느껴집니다.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은 결혼하면서 ○○의 며느리로 불리다가, 아기를 낳으면 ○○의 엄마로 불립니다. 그러다가 손자 손녀가 생기면 ○○의 할머니로 불리면서 만인의 할머니가 됩니다. 생애주기에 따라 타인에게 불리는 호칭이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처음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불리는 순간에는 마음이 묘하다고들 합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때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교육 전에 호칭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으면 교육 내내 마음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자 설문을 합니다. 첫 번째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아주 큰 어른을 일컫는 말 같아서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쓰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호칭은 늙은이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선배 시민’이라는 호칭은 어떠세요? 하고 여쭤보면 어색하지만 그나마 사람들 사이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아 마음에 드신다며 박수로 호응을 해줍니다.

어른의 이름을 부르면 왠지 실례가 될 것 같아 일부에서는 ‘고령자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지만, 그 호칭이 적절한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름+님’으로 불리는 데 연령에 따른 선입견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여러 호칭을 살펴보았지만, 누군가의 호칭을 부르기에 앞서 내가 이름을 불러 줄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격적으로 다가서는 마음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먼저 상대의 마음에 가서 닿을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꽃이 되어줄 그 이름을 불러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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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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