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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주님 부활 대축일 - 부활 아침은 부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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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20,1)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사랑으로 내달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발걸음에서 부활은 시작됩니다. 무덤을 막아 놓은 돌은 이미 한쪽으로 굴려져 있습니다. 주님은 돌무덤을 깨뜨리고 만장을 휘날리며 오는 개선장군이 아닙니다. 라자로의 소생처럼 부스스 일어나는 강시도 아닙니다. 부활 사건은 당신을 죽인 이들에게 나타나 “네 이놈들”하는 복수극 놀이도 아닙니다. 주님은 평상시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십니다. 그런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쉽게 알아봅니다. 부활은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부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1. 머릿수건을 통해 믿음으로

부활 아침은 심상치 않은 뭔가로 부산합니다. 새벽녘에 막달레나가 무덤으로 달렸고, 막달레나의 전갈을 받고 두 명의 제자도 무덤을 향해 달려나갑니다.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였습니다. 함께 달렸지만,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습니다. 복음은 사랑이 먼저 앞선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러나 부활 사건의 첫 번째 현장 목격은 교회의 대표격인 베드로에게 양보합니다. 그들이 확인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이 주님 부활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권력자들은 시신 탈취사건으로 결말을 내려 합니다.

빈 무덤에서 두 명의 제자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베드로는 단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6절 참조) 사랑받는 제자는 다른 징후를 감지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아마포와 함께 놓여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다’라고 성경 본문은 덧붙입니다. (8절 참조) 머릿수건이 따로 개켜져 있다는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습니다. 어느 시신 탈취자가 머릿수건이라 해서 따로 잘 개켜놓겠습니까? 무엇보다 ‘믿었다’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부활 사건은 이런저런 증거만으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등을 따져 나가지만 퍼즐게임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진 않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는 믿음의 영역이 있습니다. 아울러 부활의 의미와 함께 어떻게 부활을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2. 분명한 단서는 말씀

중요한 단서는 살아 계실 때의 주님 말씀입니다. 주님은 여러 차례 기회가 날 때마다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죽었다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10절) 그러나 차츰 그 말씀을 기억해 내고 ‘아! 맞다. 그리 말씀하셨지’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막달레나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까이에서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요한 20,14 참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활하신 주님이 아닌가 봅니다. “마리아야!”하고 주님이 부르자 그때 비로소 알아봅니다. 그녀는 바로 “라뿌니!”하고 응대합니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살아생전 얼마나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었는가?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뵙는 관건이 됩니다. 그분의 목소리, 그분의 따뜻한 시선, 아픈 이를 일으키시고 빵을 집어주시는 그 손길에 얼마나 머물렀는지입니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해맞이하는 부지런한 이들이 있어 새벽 동이 터지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불 속에서 잠에 취해 있다면 떠오르는 태양은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부활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허나 사랑 없이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없습니다. 부활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신비입니다. 부활 아침은 조용하지만, 사랑으로 부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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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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