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생활] (16) 나이 들어 행복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경로당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하면 긍정적으로 답하시는 분이 1~2명 정도 계십니다. 그분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점은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년 전 80세가 넘으신 어르신께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을 내보이며 국내 167곳 성지순례를 계획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사실 불가능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르신을 만나 계획하셨던 일은 어느 정도 실행하셨는지 여쭙자 마지막 한 곳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 들어보세요.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어르신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올해는 최고 북단에서 부산까지 도보순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서 연세가 많다고 반대하지는 않느냐”고 묻자 “실행하는 사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종착지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는 반면,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만류하는 사람은 어려움과 난관을 먼저 계산하고 끝까지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다”고도 하셨습니다. “종착지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작한 만큼 느끼고 성장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시작보다는 앞뒤를 재고 있는 저의 마음과 발이 얼마나 게으른지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인이 되면 ‘해야 하는 것’들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주변의 걱정과 요구들이 많아집니다. 골절될 위험이 있으니 걷지 말라고 하고, 낙상할 수 있으니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면 번거로우니 적게 먹으라고 하고, 외출하고 오면 아플 수 있으니 집에만 있으라고 합니다. 온통 하지 말라는 것뿐이니, 점점 인생이 재미가 없어지고 무료해진다고 어르신들은 말합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포기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노년이라는 체력의 한계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신체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기능들도 점점 둔화됩니다. 무리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산책도 하고 햇볕도 쐬며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체 유지에 큰 도움이 됩니다.
활동적이시던 분이 다리에 힘이 풀리고 관절이 약해지면서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만 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한다는 자신이 부끄러워서라고 하십니다. 반면, 누워서 생활하시는 와상 어르신은 조금이라도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부럽다고 하십니다. 노년이 되어 가면서 신체 기능들이 쇠약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노년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박사보다 더 높은 것이 무엇일까요? ‘밥사’입니다. 밥을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학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이보다 밥 한 그릇이라도 이웃에게 대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더 존경을 받습니다. 밥을 사는 사람보다 더 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봉사는 크고 작음을 떠나 물질, 재능, 시간을 나누는 마음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떠한 처지에서든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는 별입니다. 왜냐하면 별처럼 셀 수 없을 만큼 감사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