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6. 멀티태스킹
바빠서 바쁜 것이 아니라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이 분주하게 만드는 지 모른다. 현대인들은 디지털 산만함으로 집중력과 자제력을 잃으면서 영적 감각이 무뎌짐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출처=픽사베이(pixabay)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교안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책 읽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이 머릿속에 들어와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책에 몰입하는 순간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라디오 소리에 몰입하면 책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그런데요. 소리가 없으면 허전해요.” 조용히 책만 읽는다거나 혹은 단순 노동이나 운동을 할 때 무언가 비어있는 듯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허전함은 공허하고 단절된 것 같은 불안감에서 오는 외로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분주하고 꽉 찬 느낌을 자꾸 찾는다. 길을 걸을 때도 이어폰을 꽂고 다니거나 통화를 하면서 걷는다. 혹은 컴퓨터를 켜놓고 영상을 보면서 과제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면서 무언가를 먹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외로움이 키운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멀티태스킹은 꽉 찬 느낌적인 느낌으로 공허함이나 외로움을 잊게 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 산만함에 익숙해진다. 물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도 능력이다. 어떤 특정한 일은 매우 능숙해서 다른 일과 동시에 해낼 수도 있겠다. 보통 우리에게 가장 능숙한 일은 걷기다. 하지만 거리에서 종종 스마트폰을 들고 걷는 사람에게 부딪힐 뻔한 적이 있다. 하다못해 다른 생각을 하고 걷다 보면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할 확률도 꽤 높다.
한때 매일 운전하면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같은 길이니 얼마나 능숙할까 싶지만 누군가 대화하거나 다른 생각 하면 신호등 앞에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길을 지나치기도 한다. 운전을 잘한다고 하여 한 눈 팔다가는 낭패를 본다. 그러니깐 어떤 일이 능숙하다고 하여 다른 일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사실상 우리의 뇌는 두 가지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컴퓨터는 여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하는 모노태스킹(mono-tasking)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다중작업은 순차적이고 연속적으로 빠르게 스위칭하면서 마치 한꺼번에 하고 있다는 착각을 줄 뿐이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다가 독서에 집중하면 음악은 그저 하나의 진동이 된다. 그러다 다시 음악에 몰입하는 순간 책을 읽기보다 보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뇌에 장착된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는 것과 같다. 번갈아가며 일 처리를 하면서 집중대상이 자꾸 바뀌니 산만해지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다중작업은 이렇게 뇌를 혹사시키고 피로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나와 심지어 두뇌기능도 일부 손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점점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먹으면서 듣고 들으면서 보고 보면서 이야기한다. 바쁠 때도 허전할 때도 이일 저일을 동시에 한다. 대화할 때도 다 듣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 말이 길어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말을 끊고 들어온다거나 심지어 동시에 여러 명이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천천히 한 사람씩 말하면 안 되느냐’고 하면 “회의하는 것도 아닌데 다 알아들어요” 하며 분위기 깨지 말라고 한다.
바빠서 바쁜 것이 아니라 집중할 수 없는 산만함이 분주하게 만든다. 하나에서 둘을 건너갈 여유가 없어지고 셋, 넷을 동시에 넘어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세상은 마치 2배속, 4배속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디지털환경은 습관적 산만함에 익숙하게 만들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주함과 바쁨으로 도피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반응하고 밋밋하고 고요한 것을 못 견뎌 한다. 디지털 산만함으로 집중력과 자제력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영적 감각은 무뎌진다. 심심함과 지루함을 숙성시켜야 외로움이 고요함으로 발효되면서 영성의 문이 열리는데 말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누군가 현자에게 “스승님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습니까?”라고 묻자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잠잘 때는 잠만 잔다”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으려면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충실하라는 조언인데요. 걸을 때는 걷고 통화할 때는 적당한 장소에 앉아서 하고요. 밥을 먹을 때는 온전히 그 맛을 음미하고, 음악을 들을 때는 소리의 진동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감상하는 것이지요.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내면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인데요. 외로움은 혼자 있는 아픔이지만 동시에 하느님 앞에 홀로 머무는 거룩한 시간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