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며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창조주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도록 초대받은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잘 보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장하여 열매를 맺으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믿는 이들이 이 소명대로 충만한 삶을 살아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따라서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해칠 수 없습니다. 인간 생명을 침해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공격입니다. 다만 자기 생명을 지키는 정당방위만이 예외적으로 인정됩니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옛 계명에 더하여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욕하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사형 제도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기에 폐지를 요구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애타게 찾는 목자처럼 하느님께서는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는 무고한 생명에 대한 폭력과 파괴가 만연합니다. 카인의 살인부터 인류 안에 스며든 생명에 대한 폭력이라는 악은 오늘날에도 전쟁, 학살, 인신매매, 아동 및 노인 학대 등의 형태뿐 아니라, 낙태, 안락사, 인간 배아 연구 등이 합법적인 형태로 행해지는 방식으로 ‘죽음의 문화’를 확산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을 향한 폭력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의 문화의 공범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낙태와 안락사처럼 효율성과 경제적 이익을 우선적인 가치로 내세우며 약한 생명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지적처럼 우리 시대에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의 “규율 없는 자유”와 제한 없는 욕망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생명이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짓밟히고 있기 때문입니다.(「생명의 복음」 22항)
생명 주일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호소처럼 방어 능력이 없는 약한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생명의 문화’를 확산하기를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하느님을 잊어가는 이 세대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고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우리 신자들이 먼저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며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섭시다.(「생명의 복음」 5항, 95항 참조)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