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느 병실을 방문하여 항암치료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는 40대 교우 환자를 만났다. 첫 방문 때 인사를 드리자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수녀님 그럼 제가 수녀님에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요?”
순간 반가웠다. 원목수녀로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에게 편안하게 마음가는 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라고 했다.
이분은 처음엔 선뜻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망설이시더니 몇 차례 만남을 거듭하면서 차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 건강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왔던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말기 위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뀌게 된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생계를 꾸리느라 일에만 매달리고 앞만 바라보면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과 가족 일 그리고 신앙의 의미를 진지한 자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었다.
만남이 거듭되던 어느날 그분은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자신이 비록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편안하고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수녀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목자로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뜨거워지고 힘이 났다.
병원에서 일하는 몇년간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은 병이 낫기를 희망하면서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환자나 가족들 의료진들이 병 치료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치료는 의료진이나 심리상담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하듯이 영혼의 치료는 사목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교회에서는 인간에게 몸과 정신뿐 아니라 영혼이 있다고 가르쳐왔다. 이 세 요소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지금의 내가 되게 한다. 그러니 이 세 요소 중에 어느 하나가 병들면 온전하게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겉으로 보여지는 많은 이들에 마음을 쓰고 있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가 10 41-42). 그리고 육신의 생명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깊이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 다음 필자는 김미현(실비아 마산교구 가정사목부)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