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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할퀴는 말에 괜찮은 부모 없다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생활] (20)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치유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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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사회복지 분야의 일을 하는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며 하이파이브로 인사하고,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나누는 것은 상대가 기쁜 하루가 되길 바라는 고운 마음입니다. 인사가 전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시는 어르신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앞을 서성이며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무언가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행여 인지가 약한 어르신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포스터의 모델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 예쁘다….”라는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어르신, 포스터 모델 사진이 그렇게 예쁘세요?”하고 여쭙자 어르신은 “이렇게 웃고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예쁘다고 하면서 키웠는데,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네요.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봐요”하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잠시 후 아들로 보이는 남성분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머니를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여기서 이렇게 꾸물대고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차에 타야 저도 일을 볼 거 아니에요!” 어르신은 아들의 성화에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들의 잔소리는 닫힌 문 너머로도 계속 들려왔습니다. 아플까, 다칠까, 걱정하며 기른 자녀에게 바라는 건 웃으며 사는 모습인데, 이마저도 공감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의 마음이 얼마나 외로울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갑니다. 언어는 정보와 소통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함으로써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걸러지지 않은 감정들을 즉각적으로 쏟아내고는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마음은 부족합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도 부모님에게 정중히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님도 자녀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를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지, 상처가 되는 말 앞에 결코 괜찮은 부모는 없습니다.

‘그걸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해요.’, ‘여행 다녀오는 동안 엄마는 집 좀 봐주세요.’, ‘문자 보내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가르쳐줘도 자꾸 잊어버리시는지….’

어르신들을 상담해 보면 자녀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비수가 되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서운함이 늘어가는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는다고도 합니다.

노년이 되면 상처와 아픔, 본질적인 외로움을 겪습니다. 노년이 되어도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몸은 좀처럼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뿐입니다. 점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곁에서 동반하는 가족들에게 인내가 요구될 때, 사랑이 아니라 의무라고 의심이 되는 순간 노년의 삶은 서로에게 짐이 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보다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현재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 세대는 표현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실상 알아주지 않아서 상처를 받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노년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용서해 줌으로써 치유가 되기도 하지만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직접 표현함으로써 자유와 행복을 통해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노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할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표현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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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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