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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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소통시대 살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사라져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23. 전화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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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스마트폰 삼매경 속에 살지만, 많은 이가 통화에 불안을 느끼는 전화 공포증이란 현대병을 갖고 있다. OSV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웠다….”
(나훈아, ‘찻집의 고독’ 중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다. 마냥 기다리면서 가슴은 뛰고 꿈결처럼 감미로웠다. 늦는 이유도 모르면서 상대를 향한 믿음과 그리움과 설렘을 품고 기다렸다. 그때는 그랬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한없이 기다렸다. 어쩌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딸까닥 동전 넘어가는 소리에 급하게 동전 넣어가며 이어가는 소통은 애타면서도 달콤한 긴장감이었다.

지금이야 저마다 스마트폰 들고 있어 안부는 물론 실시간 문자로 서로의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기다림은 의미 없는 낭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화가 많지 않던 그때는 주인집 아주머니나 동네 이장님이, 혹은 다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전화받아요’라는 소리만으로도 어둔 무대 위 조명 하나가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는 듯 설렜다.

그러나 과잉소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은 밤과 낮의 구분 없이 늘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어두운 동굴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꿩처럼 위기상황에 머리만 박으면 안 보인다고 믿는 것처럼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동굴 속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밝은 현실무대로 자신을 끌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전화만 오면 불안감에 통화 자체가 편하지 않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전화로 들려오는 육성이 불편하고 어색해서 수신을 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어릴 적 디지털기기를 사용한 MZ세대 10명 중 7명 정도는 전화통화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전화벨만 울려도 초조해지고 식은땀이 나고 두려운 감정이 몰려오는 ‘전화 공포증’(Call Phobia)이라는 현대병이 등장했다.

전화통화가 힘든 이유는 생각대로 말이 안 나오고 실수할 것 같아서란다. 특히 직장 상사나 어른들과 통화를 할 때 예의범절도 갖춰야 하고 또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각할 틈이 없이 바로 대답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감정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문자는 할 말을 미리 정리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감정을 숨길 수 있고 꾸밀 수도 있다. 하지만 전화는 감정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런 느낌이 싫단다. 전화는 대면보다 더 큰 긴장감을 주기에, 간편하고 쉬운 문자소통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타국에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전화로 이야기할 때였다. 그 사람의 표정과 입 모양이 보이지 않고 나의 바디랭귀지도 보여줄 수도 없어 그저 ‘오케이’, ‘예스’를 남발했던 웃픈 기억이 있다. 사회초년생인 MZ세대들에게 사회 불안증이나 전화 공포증이 더 많은 이유일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버트 메라비언은 효과적인 소통 93가 비언어적 요소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밝힌 공식은 이렇다.

“소통의 전체 호감도 = 언어 호감도 7 + 목소리 호감도 38 + 얼굴 표정 호감도 55”

문자에는 목소리도 표정도 없다. 온갖 이모티콘과 특수문자가 총동원되지만, 3명 중 1명이 받은 문자메시지로 오해하고 인간관계까지 틀어졌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요즘 과잉소통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단톡방은 점점 더 늘어가고 원치 않는 대화는 쌓여간다. 위스콘신대학의 인류학자 레슬리 셀쳐(Leslie Seltzer)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엄마와 자녀와의 소통에서 전화나 대면으로 할 때 자녀에게서 스트레스와 호르몬 코티솔은 줄고 만족감과 관련된 옥시토신 호르몬의 수치가 상승한다고 한다. 그런데 메신저를 통해 대화한 자녀들은 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란다.

우리는 앞으로 느리고 번거로운 전화나 영상통화보다 간편하고 빠른 문자소통을 더 선호할 것이다. 한쪽이 원하기만 하면 상대방에게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소통 시스템도 곧 작동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를수록 소중한 사람과는 조금 천천히 마음을 담은 소통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운” 그런 기다림이 있는 소통 말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저는 타국에 있을 때 고국의 지인이나 가족과 주로 전화나 팩스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가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전화 요금 많이 나온다. 이만 끊자!”라는 어머니의 투박한 음성과 어머니의 헛기침이나 침묵 그 자체로도 사랑은 충분히 전달되었고 행복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외국의 지인들과 페이스북과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소식을 훤히 알게 돼요. 그것도 아주 빠르게요. 그런데 그만큼 그리움도 반가움도 궁금함도 설렘도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삶을 살았는데요. 어쩌면 궁금해하고 염려하고 기다리면서 우리의 기도는 점점 더 깊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이고 기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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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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