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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세상을 아버지의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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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미사 후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자매 하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멈칫거립니다. 괜찮다며 말씀하시라 하자 이내 입을 여십니다. 나에게 성체를 받아 모시면 기분이 아주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의 없이 성체를 분배한다는 겁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불 꺼진 성당에 가 앉았습니다. 성체를 이루는 손이 어찌하여 기분 나쁜 손이 되었을까? 억울하고 한심했습니다. 숙달된 빵 장사 솜씨를 그리도 보여주고 싶었을까? 물건을 전해주고 서둘러 돌아서 갈 길을 가는 택배기사가 아니지 않는가.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체를 건네주고 받을 때 사제와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몸” “아멘”합니다. 짧은 기도문이지만 장엄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빵이 되어, 먹히는 존재로 오신 주님처럼 우리도 그리 내어 주겠다는 다짐입니다. 누구보다 사제는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차츰 마음 안에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쁨이 생겨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기분 나쁜 손을 참아 준 교우들이 고맙고 돌직구를 날려 준 그 자매가 고마웠습니다.


1. 예수님을 먹어야 하는 이유

주님은 왜 당신을 빵이라 하시며 우리에게 먹으라 하실까? 가난한 이의 눈물 젖은 빵 한 조각의 의미를 아시는 것일까? 빵(인생) 문제 해결사로 나선다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오천 명을 먹이신 징표를 보이자 사람들이 왕으로 옹립하려 한 적이 있었지만, 주님은 피하셨습니다. 우리는 남(남의 살)을 먹고삽니다. 어렸을 땐, 엄마를 먹고 삽니다. 요즘은 엄마 젖이 아니라 우유를 먹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 뱃속에선 아예 빨대를 꽂고 엄마를 먹습니다. 뭘 먹느냐에 따라 우리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먹고 당신처럼 살기를 원하십니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을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으십니다.

어느 면에선 우리는 예수님을 먹으면서 하느님까지 먹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57절) 그리하여 너희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세상을 아버지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우리가 매번 봉헌하는 성찬례는 이 주님을 받아먹고 주님의 염원을 되새기는 식사입니다.


2. 감사히 먹고 기꺼이 먹힌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3년 넘게 코로나로 혼쭐이 났습니다. 코로나 처지에서 보면 그 녀석도 인간 세상에 불려 나와 고생했습니다. 정확한 경로는 모르지만, 인간이 마구잡이로 먹어 삼킨 착복의 결과로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공존 공생합니다. 유독 인간만이 블랙홀 같은 욕망으로 모든 걸 집어삼킵니다. 인간에 의해 사라지는 동식물의 종(種)이 매년 수천에 이른다고 합니다. 생태계 파괴의 주범입니다.

인간 상호 간은 물론이고 동식물 그리고 미생물, 코로나까지도 그 존재와 영역을 인정해야 하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아야 할 돌봄 소명 또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거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히 먹고 우리 역시 기꺼이 먹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먹히는 빵이 되어 그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밥’이 되기까지 하신 그 정신을 깊이 깨닫고 산다면, 절대로 남의 밥이 될 수 없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양육강식의 논리에 사로잡힌 이 사회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밥이 되어 오신 주님! 당신을 먹고 마셔 당신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생명으로 영원을 살고, 당신은 우리 안에서 이 세상에 언제까지나 현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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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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