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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아가는 노년기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 (25) 작은 일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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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는 세 분의 수녀님과 함께 피정을 하면서 지나온 삶의 발자취에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뛰어난 업적을 이뤄서도 아니고, 그저 일상을 기도 안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오신 봉헌의 삶이 고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있으시니 도와드릴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여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과일도 챙겨주시고 식사를 늦게 하는 저를 위하여 끝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식사가 끝날쯤에는 기다려준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물 한잔을 마시고 함께 일어서십니다. 이렇듯 작은 배려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에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서 우울할 겨를이 없다며 씩씩하고 기쁘게 살아가시는 안나 할머니의 일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교황님, 주교님, 신부님, 수녀님, 자식들, 이웃 사람 등등 각 사람마다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15단을 바칩니다. 그리고 나서는 쓰레기를 줍는 노인 일자리 활동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아침을 드십니다. 고추, 상추가 심어진 옥상 화단 텃밭에 물을 주고 성당에 가서 미사 전에 십자가의 길도 바치십니다. 미사 후에는 신자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지막에 신부님 손을 잡고 소금 사탕을 건네줍니다.

50대 중반이 훌쩍 넘는 신부님이 사탕을 좋아할 일이 만무하지만, 안나 할머니에게는 가장 맛있는 사탕이기에 신부님께 드리는 것이 큰 낙입니다. 사탕을 받으신 신부님께서 감사 인사를 건네주시면 안나 할머니는 천국이 부럽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맘때가 되면 안나 할머니는 봄내 옥상 텃밭에서 길렀던 고추, 상추, 오이를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도록 집 앞에 내다놓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짜로 가져가는 것을 의심쩍어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들이 길렀던 것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과일을 사다 놓기도 하면서 나눔 장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기르고 있는 열대야 물고기 구피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재활용 플라스틱에 다섯 마리씩 담아서 물고기 밥과 함께 내놓았더니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이집저집에서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안나 할머니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제 가슴에 작은 감동들이 밀려옵니다. 크고 대단한 영웅의 이야기는 나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일상 속 소소한 나눔의 생활은 나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인 나약함에 갇혀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져간다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이 듦의 가장 큰 강점은 세월의 시간만큼 경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로움과 관대한 마음으로 이해하며 살아간다면 자비로운 마음은 거저 주어진 은총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주인공에 집중하지만, 주인공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조연의 연기력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세대에게 인기가 많으면 연기 경력이 짧더라도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추세지만, 조연은 연기력으로 내공이 쌓인 사람들을 선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듯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연기대상은 연기를 가장 잘한 조연들에게 주고, 인기상은 시청률과 관계가 있는 주인공에게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 듦이 있기에 인생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인생의 후반기도 석양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일깨워 주기에 젊음이 빛날 수 있도록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노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연의 삶은 겸손한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존경한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모든 역할이 끝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갈 때 그 사람을 겸손한 사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금경축을 맞이한 수녀님께 5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여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작아지고 그분께 의탁하는 영역이 커지면서 주님을 자주 부를 수 있고 찾게 되는 것이 행복이고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씀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을 찾는 마음이 깊어지는 시기가 노년기라면,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아가는 시기 또한 노년기이기에 ‘나이 듦은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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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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