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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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능력 향상은 훈련·학습에 의해서만 가능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26. 스크린 훑기와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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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에게 종이책 읽기 회로는 사라지고, 디지털 읽기 방식의 뇌 회로에 의해 삶의 소통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모습. OSV

 


한 수련자가 “영적 독서 시간만 되면 졸리고 묵상 시간이 너무도 지루하고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는 중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게임중독에 빠져 살아왔다. 중독 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게임중독자의 뇌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조절도 어렵다. 빠른 보상에 익숙해진 뇌가 멈춰서 깊이 읽고 천천히 사색하는 독서와 기도가 힘겨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독서 감수성이 아주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진화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퇴화라고 할 것이다. 독서 인구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 동시에 원하는 정보만 읽는 전자책 발췌 독서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편리함과 편향이 책 읽기까지 영향을 주면서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추세다.

요즘처럼 검색과 전자책이 대세라면 완독을 해야 하는 종이책 읽기만을 고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시대에 따른 보편적 감수성이 있으니 기존의 독서경험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라는 것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논란은 이미 식상한 화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요즘 누가 종이책 읽느냐?”며 무거운 종이책보다는 웹툰과 전자책이 익숙해지고 있는 시대라고 소리를 높인다.

하기야 몇 년 전만 해도 미사 중에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행위를 보면 불경스럽게 보였는데, 최근에는 대놓고 스마트폰 꺼내 들고 성경 말씀을 읽기도 하고 성가를 부르는 것이 꽤나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사제가 태블릿 피시를 보면서 강론을 하거나 알림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나 역시 수녀원 아닌 곳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기도했다는 의무감에서는 해방되었는데 뭔가 모르게 불편하다. 나의 감수성이 또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무거운 성무일도 책에서 느껴지는 특유한 향기, 종이를 만지는 손끝에서 전달되어오는 경건함이 좋다.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있다.” 인지과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말이다.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면서 ‘깊이 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깊이 읽기는 반성하고 사유하고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깊이 읽기가 안되면 인지적 인내심도 서서히 잃게 되고 비판적 분석능력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깊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종이책을 읽으려면 몸과 마음이 멈춰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집중해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에 따라 뇌도 마음도 차근차근 선형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디지털 읽기는 다르다.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빠르게 이동한다. 무엇보다 비선형적인 하이퍼텍스트의 구조로 인해 산만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지면 종이책도 스마트폰 스크린을 훑듯이 빠르게 핵심만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읽을 때에도, 기도할 때에도, 미사에 참여할 때에도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훑어보듯 우리의 행동방식도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된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이런 현상을 ‘블리딩 오버(bleeding over)’라고 한다. 뇌의 가소성 원리에 의해 종이책 읽기 회로는 사라지고 디지털 읽기 방식의 뇌 회로에 의해 우리 삶의 소통방식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책 읽기 능력 향상은 훈련과 학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스크린 훑기에 익숙해지면 책 읽기의 뇌 회로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읽기를 배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신학교나 수도원에 들어와 신학이나 영성분야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 때, 혹은 긴 시간을 묵상해야 할 때 그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 될지 헤아려본다. 어쩌면 종이책 읽기는 단순히 정보습득을 위한 행위가 아닌 바로 영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어야 할 것 같다.



영성이 묻는 안부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의 뇌에서 마치 게임을 할 때처럼 비슷한 뇌파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요.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다른 중독성 있는 프로그램을 접속한 경험을 뇌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마치 게임중독자가 컴퓨터 켜는 소리만 들어도, 알코올 중독자가 소주 사진만 봐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연기만 맡아도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결과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지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만 고집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노력하지 않아도 디지털 스크린엔 손이 가는데, 종이책은 의지적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네요. 지루하더라도 두꺼운 책에 손을 얹고 책의 속도에 맞춰 삶의 시간을 늦춰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성당에서 견디기 힘든 고독을 품고 또 품어 ‘산만함’의 진통을 깨고 나온 ‘견딤’과 ‘멈춤’의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즐겁게 춤을 추는 것보다 멈춰 느리게 존재하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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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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