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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주님,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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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 가톨릭평화신문 DB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선조 중 한 분인 정약용(요한)은 박해가 오자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이분이 신앙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았다는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많다고 합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다산은 강진에 유배 온 후 석벽에 정석(丁石)이란 글씨를 새겼으며, 3채의 초당(草堂)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18년간 학문에 매진하여 목민심서 등 많은 기념비적인 저술을 남겼습니다.

이는 아마도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며 3채의 초막을 지어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봉헌하고 거기에 머무르고 싶어 한 바람을 자신도 똑같이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다산초당은 정약용의 ‘학문의 영역’이자 ‘신앙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속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당신의 인성(人性)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의 신성(神性)을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콜로 2,9)

이 사건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과 수난 예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 후에 전해지는데 이는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는 말씀의 실현을 미리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을 닮은 존재가 되도록 운명지어진 우리가 주님의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길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씀에 응답하여 우리도 현대인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 나름대로 ‘초막’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도시 안에 ‘광야’와 ‘높은 산’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도시인의 분주한 외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내 마음 안으로 침잠하는 내적인 생활을 되찾을 때 이미 내 마음의 밭 속에 묻혀있는 보물인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심은 그분이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말씀은 생명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4 참조)

우리의 내적 생활이 이 말씀의 빛 안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우리 육신 안에 깃들어 있는 영혼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되찾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구요비 욥 주교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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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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