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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교회의 문은 더 활짝 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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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베드로의 믿음은 반석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장담하지만 즉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발뺌합니다.(요한 14,37 이하) 오히려 검불에 가깝습니다. 검불 같은 믿음이 어떻게 반석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점에서 묵상하게 됩니다. 첫째, 신앙 고백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 하늘나라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입니다.



1. 나의 신앙 고백은 사랑 고백인가

베드로가 복된 이유는 정답을 말해서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그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정답은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통해 알고 있고, 교리 때 배웠습니다. 신앙 고백은 ‘사랑 고백’입니다. 남의 ‘사랑 고백’을 그대로 들려주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기 어렵습니다. 내 실존을 걸어 당신은 나의 누구라고, 살아 계신 당신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를 다양하게 만나주십니다. 어느 땐, 친구로. 어린 양으로, 목자로. 길이요. 진리요. 포도나무요. 빵으로 오십니다. 지금 나에게 어떤 분으로 다가오시는지 열린 마음으로 성령의 일깨움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 고백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대한 공고한 신앙 고백은 우리를 파스카 여정으로 힘차게 인도할 것입니다.



2. 하늘나라 열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열쇠는 본디 매고 푸는 기능이 있습니다. 무엇을 매고 풀 것인지? 먼저 열어젖히고 풀어내는 기능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복음의 기쁨」에 보면, 교회의 문을 ‘열고’, ‘열어젖히고’, ‘자신에게서 벗어나’ 등의 표현이 수십 번은 나옵니다. 교종은 자주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종께서는,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하고, 성사들의 문이 닫혀서는 안 되며 특히 “문” 자체인 세례성사가 그러하고 성찬례는 성사 생활의 충만함이지만 완전한 이들을 위한 보상이 아니라 나약한 이들을 위한 영약이며 양식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은 우리가 신중하고도 담대하게 숙고하도록 부름 받고 있고 사목적 귀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복음의 기쁨」 47항)

저는 ‘사목적 귀결’이란 말씀에 주목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성체 안에 주님 현존을 믿는다면 그가 어떤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성체를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에게도 손수 빵을 건네셨습니다. 저는 일반 병원 원목 사목자입니다. 한 번은 미사에 참여한 개신교 신자의 간절함에 성체를 영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죄와 미움 불신으로 단절된 그곳을 풀어내야 합니다. 남북 관계, 정치권, 갈라진 신앙의 형제들 관계도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씁쓸하게도 굳게 닫힌 차가운 성당 문들을 빈번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저승의 세력도 이길 수 있지만, 사탄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 이후에 주님이 수난을 예고하자 베드로는 반발합니다. 그때 주님은 방금 그토록 극찬과 영광과 권한을 안겨준 베드로에게 거침없이 “이 사탄아, 물러가라”고 몰아붙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마태 16,23)

감시하고 옭아매 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한 예로 ‘영적 세속성’입니다. 신앙심이란 외양 뒤에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전례, 교리, 교회의 특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 속에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93항 참조)

“하느님, 껍데기뿐인 영성과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이 숨 막히게 하는 세속성은 성령의 순수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이 없는 종교적 겉치레 밑에 감춘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복음의 기쁨」 9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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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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