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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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한가지를 분명하고 생생하게 마음에 담는 것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1. 집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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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점 존재와 존재 간의 만남을 잃으면서 더 큰 절망과 외로움, 슬픔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OSV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풀꽃의 시인으로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다. 그런데 최근 시인은 자신의 시 ‘풀꽃’이 우리나라에서 ‘폐기’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해왔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사랑하는 시다. 그런데 왜 시인은 이 시가 우리나라에서 사라졌으면 했을까? 사실 이 시는 그저 마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시는 아니다. 슬프고 우울한 시다. 시선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 세상에 왔다가 흔적 없이 가버리는 작은 존재인 풀꽃. 그렇기에 자세히, 오래 봐주어야 사랑스러운 풀꽃이 된다. 특히 ‘너도 그렇다’라는 바로 이 부분이 우리 가슴 밑바닥 어딘가에서 뜨겁게 훅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준다. 잠시 바라만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여야 하는 우리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풀꽃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제발 멈춰 ‘자세히’ ‘오래’ 나를 바라봐주라는 우리 각자 마음속에 있는 갈증이며 욕구일 것이다.

풀꽃, 쉽게 지나치기 쉬운 작은 존재다. 지천에 널린 게 풀이고 그런 풀숲에서 자란 꽃들 앞에 멈추기엔 우린 너무 분주하고 바쁘다. 때론 풀꽃이란 존재 자체도 의식하지 못하고 함부로 밟기도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에 지쳐 집에 들어오면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 피로를 푼다. 가족과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자세히, 오래 보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하고 각방에 들어갈 때도 많다.

게다가 우린 각자 홀로 스트레스를 푸는 삶의 양식에 많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더 외롭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부르듯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 소외되어 살아간다. 어떤 때는 내가 타인을 풀꽃 보듯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가 나를 그런 작은 존재로 취급한다. 그러다 누군가 나에게 친근하고 나직하게 말을 건네 온다. “당신도 가만히 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야. 오래 사귈수록 사랑스럽군”이라고. 순간 존재의 충만함이 느껴지면서 위로가 된다. 어쩌다가 우리의 존재가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을까. 많은 지식인들은 유사 이래 현대인의 삶처럼 덧없고 허망한 적이 없다고 한탄한다. 존재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역할을 수행하고 소유를 향한 기능인의 존재는 빈곤하다. 불안하고 외롭다. 성과를 내야 하는 기능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바빠도 너무 바쁘게 산다. 왜 바쁜지 이유도 모르고 바쁘다. 그렇게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도파민 제조기계’인 스마트폰으로 해소한다. 사실 해소되는 기분일 뿐일 텐데 말이다. 부적처럼 밤낮으로 끼고 살면서 디지털 과부하로 정신은 분산되고 초점은 흩어져 산만하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일은 참으로 지루하고 심심한 일이 되었다.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한 하리는 집중력 위기의 시대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에서 직장인의 평균 집중시간이 3분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10대는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니 믿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청소년들의 집중력 또한 위험단계까지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매기 잭슨(Maggie Jackson)은 「집중력의 탄생」에서 “우리 사회는 한 곳에 오랫동안 깊이 초점을 맞추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삶의 여정에서 찾아오는 절망이나 두려움 그리고 슬픔을 덜 느낀다”고 한다. 반면 ‘집중력 부족은 몰입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의 부재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집중력이란 무엇일까?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여러 생각 중 “한 가지를 분명하고 생생하게 마음에 담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도가 그렇다. 기도란 오로지 생명의 창조주이신 단 한 분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마음에 모시는 일이다. 기도도 집중력이다. 반성도 성찰도 그리고 누군가를 배려하고 참아주고 인내할 수 있는 것도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제 자리로 돌아가는 회심의 행위로 이어준다. 자세히, 오래 보지 않아도 그저 잠깐, 하나의 대상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마음에 담는다면 너도, 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태어난다.


영성이 묻는 안부

방금 전에 만났고 인사까지 나눴는데 나의 마음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만났고,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마음 깊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고요. 어쩌면 자세히, 오래 보지 않아도 진심으로 주의를 기울여주기만 해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풀꽃을 자세히, 오래 볼 수 없듯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자세히, 오래 만날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정원의 풀꽃만큼은 잠깐이라도 마음을 다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들과 짧은 시간이라도 주의를 기울여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만 해도 서로에게 충만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하물며 하느님을 만날 때의 주의력과 집중력은 또 얼마나 중요할까요? 기도에서 하느님의 충만한 현존체험은 곧 우리 존재의 결핍이 충족으로 바뀌는 순간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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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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