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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역사 -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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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참 좋다”며 기뻐하셨다.(창세 1,31 참조)

그 기쁨이 인간에게 스며들었고, 이제 기쁨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사악은 하느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는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6,4) 이 때가 기원전 2000년경이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에서 탈출에 성공해 완전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간 유대인들은 기쁨에 휩싸인다. 얼마나 기쁨이 컸을까. 유대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발 구르며 환호했다.(탈출 15,1-21 참조)

또 기원전 1000년경,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 왕은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런 다윗의 모습에 대해 사무엘 하권은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2사무 6,14), 역대기 상권은 “껑충껑충 뛰며 춤추었다”(1역대 15,29)고 표현하고 있다. 이후 기원전 630년경 예레미야 예언자는 충만한 기쁨 안에서 새 계약을 선포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예레 31,31)

이후에도 기쁨의 역사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는 소리를 들었다. 들판의 목자들도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기쁜 소식으로 세상에 온 그리스도는 스스로 기쁨 한가운데서 머물렀다.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요한 11,15) 

죄가 많아 우울하다고?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그리스도는 기쁨에 대한 이러한 의문 부호들을 말끔히 걷어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예수는 죽음이 임박한 그 고통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조차, 혼인 잔치의 기쁨에 대해 말했다.(마태 22,1-10)

수천 년을 이어온 기쁨의 역사는 예수의 탄생 이후, 전혀 다른 물줄기를 타기 시작한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분의 현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 기쁨을 전하는 기쁨은 또 얼마나 큰가. 기쁨의 역사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야 한다. 그 ‘참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소명에 동참해 달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호소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복음의 기쁨」 24항)

지금 교회는 개인주의적 기쁨, 물질주의적 기쁨, 감각적 기쁨이 아닌, 선포하는 참 기쁨의 정중앙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주님 성탄 대축일이 다가온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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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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