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부여된 ‘천주의 모친(Theotokos)’이라는 호칭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께서 성모님에게서 태어날 때 한 인간에 불과했고, 그분 생애의 어느 시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는 순수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모님을 ‘사람의 어머니’라고 칭하였습니다.
교회는 그런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성모님께 대한 호칭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즉 ‘천주의 모친’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구원의 협력자로서의 성모님께 대한 공경을 고취시키는 것이고 동시에 예수님의 천주성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그 탄생부터 참된 인성과 참된 천주성을 지니신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교회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예수님 탄생의 신비와 깊이 연관된 축일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성탄의 의미와 기쁨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를 세상에 파견하여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찬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그분의 상속자가 되게 해주신 것, 이것이 예수님의 성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런 성탄의 놀라운 사건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겸손되이 받아들이신 성모님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성모님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목자들에게 구세주 탄생을 알려주셨고, 목자들은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천사로부터 들은 대로 구유에 누운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들은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단 한 사람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기셨습니다. 그러한 성모님의 모습은 한 사람의 인격 전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내적 자세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것을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이야말로 모든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러한 오늘 첫 독서의 말씀대로 참된 축복과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할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축복과 평화를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천주의 모친’이 되신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유승록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