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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소에서 야단맞은 신부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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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동안 책상 위에 있었지만 손 한번 가지 않았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지기 이야기」라는 제목의 작은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SSP라는 이니셜만 공개되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성당지기 사제의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통해 저자가 신부님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시절, 성당지기 신부님은 판공성사를 드리고 있었다. 차례대로 고해소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고백을 들으시면서 혹시나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되거나 형식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고해소로 들어 온 신자들이 있다면 정확히 지적을 해주고 훈계를 해주셨다고 한다. 게다가 냉담의 정도나 죄의 경중에 따라 형평성 있는 보속을 주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성당을 나오지 않았거나 대죄를 지은 신자들에게는 여지없이 무척 엄중한 보속을 주고 훈계를 잊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 어느 형제님이 고해소에 들어와 성사를 보는데 형식을 몰라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면서 끊임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몇 분의 침묵과 몇 마디 말이 이어지고 또다시 침묵을 반복하기에 신부님은 고해성사의 원칙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그 형제님의 잘못된 자세에 대해 습관처럼 강한 훈계를 하셨다. 그러자 흰 천으로 가려진 건너편에서 흐느낌과 원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부님, 저는 20년 만에 성당에 나왔습니다. 그런 제가 고해소까지 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줄 아십니까? 그런데 이렇게 야단을 치시면 제가 어떻게 고백을 합니까? 신부님은 죄를 짓지 않습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머물렀던 지점은 바로 이 말을 듣고 난 후 신부님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신부님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말문이 막혀 잠시 멍해진 상태였지만, 곧바로 자신도 모르게 고해소 문을 열고 반대편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 형제님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형제님 앞에서 깊이 고개 숙여 사과를 드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음 진정시키시고 다시 차분하게 하느님께 성사를 보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사제의 사과는 이 형제님 앞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고해소에서는 수십 명의 신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들이 모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부님에게는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 형제에게 사제로서 교만했던 것에 용서를 청하고 그 형제가 다시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사제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인 그 형제님은 다시 고해소로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신부님도 그 이후 자신이 죄를 용서받은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이미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고해소에서 진심으로 뉘우쳐야 할 사람은 그 형제님보다는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하는 이 사제의 고백은 같은 사제로 살고 있는 나의 마음 안에 더없는 깊은 울림이 되었다. 

한 권의 짧은 책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대로 ‘양 냄새 나는 목자’로 살아오신 그분의 향기를 잠시나마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사랑과 겸손은 입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양을 치는(?) 목자가 아니라 양을 품는 목자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 빛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사목지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 걸어가시는 수많은 사제들을 위해 작은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헌하고 싶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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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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