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귀향 (3)
1980년, 사관생도 2학년 ‘독일어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김태영 소령(훗날 42대 국방장관이 되셨다)이었는데, 강의실에 들어오셔서는 “생도들 모두 책을 덮어라. 지금부터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발표해 봐!”라고 하셨다.
글쎄, 행복이란 무엇일까.
생도들이 발표하는 것을 멍하게 듣고 있다가 내 순서가 된 것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예, 행복이란 하루 한 곡의 음악을 듣고,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 뒤로 이따금 불현듯 내가 했던 대답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밭에 나가 일하며 땀이 촉촉이 스며나올 때의 기분이 좋고 그러다 한 줄기 바람이 주는 청량감이 더없이 고마우며, 허기가 느껴질 때쯤 둘러앉아 찐 감자를 나누어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을 때 농부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진다.
새벽 일을 마치고 집사람이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행복하다.
서울을 오가는 차 안에서 정속 주행 모드를 선택한 뒤 편안한 자세로 차이 코프스키와 폴 모리아, 아바를 듣는 것이 한없이 즐겁다.
김태영 교수님이 던진 질문을 늘 곱씹으면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답이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멀리 있지 않으며, 타인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송추 석굴암 벽면에는 글귀가 하나 쓰여 있다.
‘행복은 완벽한 상황일 때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함을 느낄 때 그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아멘!
글 _ 류성식 (스타니슬라오, 전 육군 부사관학교장, 수원교구 반월성본당)
1979년 소위로 임관한 후, 2012년 제30기계화보병 사단장, 2013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2014년 육군 부사관학교장을 지냈으며, 2017년 전역했다. 이후 귀향해 농업법인 (주)일팔구삼을 설립, 햇사레 복숭아, 포도, 사과, 이천 쌀, 꿀 등을 농작하고 유통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를 위한 율면 장학회를 설립하는 등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