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노호영 신부의 사진 이야기 - 어둠 속 별을 바라보며, 따라가며 (9)
호주 포트 스티븐스의 남쪽에 위치한 애나 베이(Anna Bay) 사막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고요한 수도원이나 교육회관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고 바라보는 시간을 피정(避靜)이라고 한다. 이러한 피정에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바로 ‘벗어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야지만 피정의 첫걸음을 뗄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중에 종종 외딴 곳으로 홀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그 시간이 예수님께는 성부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메시아로서의 당신 사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피정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워럼벙글 국립공원(Warrumbungle National Park)
별 촬영에서도 벗어나야 할 점이 있는데 우선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벗어나야한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사실 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별 사진을 본격적으로 하던 초기에는 유명한 장소에서 멋지게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비록 사람이 많은 관광지라 하더라도 별 촬영은 밤에 활동하는 일이라서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여기저기서 비추는 불빛들과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로 인해 사진에 애를 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일들을 여러 번 겪게 되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 바람 소리,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연 한복판으로 더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 혼자서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복잡한 세상으로부터의 벗어남에 익숙해지면 쉽게 볼 수 없는 우주와 하늘이 만든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점차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조용한 장소들만 찾아다니게 되었다. ‘내가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
복잡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잠시, 혼자 조용한 곳에 나아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내 자신을 포함해서)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의미 없는 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론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바라보아야 할 대상에 더 정확히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사진 _ 노호영 신부 (미카엘, 대전교구 고덕본당 주임)
사진으로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신부. 8년 전부터는 자연 속의 경이로운 순간들, 특히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쫓아다니며 하느님의 피조물을 촬영하고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제13회 ‘서울시 빛공해 사진공모전’ 최우수상, 제26회·제28회 ‘천체사진공모전’ 금상 및 우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