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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포도주의 의미

[월간 꿈 CUM] 꿈CUM 묵상_예수의 일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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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에 대해 좀 더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네 복음서 중에서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에는 이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신앙인들은 오래전부터 각 복음서 및 복음사가에 상징을 부여해 왔습니다. 마태오는 ‘사람’, 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소’입니다. 그렇다면 요한 복음사가는? 네 그렇습니다. ‘독수리’입니다. 유럽의 대성당에 갔을 때 소, 사자, 독수리 등의 상징이 있으면 각 복음사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요한은 독수리라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어떤 동물입니까. 굉장히 높은 곳에서 땅에 있는 작은 동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요한복음은 아주 뛰어난 신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수의 삶 전체를 높은 차원에서 조망하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독수리로 비유됩니다.

이 점에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잔치 기적 이야기는 굉장히 깊은 신학적인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통해 구원사와 관련한 깊은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머릿속에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이런 말이 나오죠.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예수님은 이미 계획이 다 있으셨습니다. 술이 떨어졌다는 성모님의 요청에 예수님은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때’는 골고타 언덕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그 ‘때’를 말합니다. 그 순간까지가야 당신의 때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적으로 예민하신 성모님의 청을 뿌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요한 2,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킵니다.

여기서 물과 포도주는 신학적인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하느님의 신성을, 물은 인간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신부님들이 포도주와 물을 섞은 후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피와 물의 상징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한 군사가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이뤄진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전하는 내용입니다. 독수리처럼 신학적인 조망을 할 수 있었던 요한 복음사가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런 구원사적 의미를 파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 위해서, 당신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쏟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기가 완성되는 시점이 바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입니다.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완성되는 그 순간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첫 번째 기적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던 예수님은 마지막 기적인 부활을 완성하시기에 앞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셨습니다. 당신의 피와 물을 쏟아내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바로 ‘물과 피를 쏟아내는 마지막을 향한 첫 번째 걸음’, ‘이제 다 이루어졌다고 말하게 될 그 마지막을 향한 첫 번째 걸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이뤄질 때 성모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적을 향해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에도 성모님이 계셨습니다.(요한 19,25 참조) 위대한 구원의 첫 걸음에도 성모님이 계셨고,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은 예수님의 구원사적 활동 전체에 걸쳐서 함께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나약하기에 예수님의 위대한 고난과 희생, 구원의 여정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길에 가장 완전하게 동행하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우리가 그런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함께 매달려 갈 수만 있다면, 그 길은 동시에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함께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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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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