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거룩한 성전

[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3)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제가 어찌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요나 2,5) 

우리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고 고통과 절규로 울부짖었으며 한편으론 교만으로 고난과 고단한 세월을 스스로 만든, 아픔과 참회의 역사였습니다.

너무도 야만적인 폭력의 시대도 있었으며 비이성적인 논란으로 필요 없이 화를 내거나 힘을 쏟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답답하리만치 시간과 역사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퇴보의 길을 걸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보다 율법학자보다 더 바리사이적인 오만과 자기만의 잣대로 살았던 때도, 더 엄격하고 무서운 율법주의자로 살았던 공포의 때도 있었습니다.

이에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교황은 대망의 21세기가 열리던 지난 2천 년 시작 때, 가톨릭교회가 인류 역사에 저지른 죄와 과오를 공적으로 참회하는 예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때 교황님이 양심 고백한, 교회가 세상 역사에 남긴 큰 죄는,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운 신대륙에서의 학살,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동조, 반유다주의, 여성에 대한 억압, 인종차별 등이었습니다.

이렇듯 얼룩진 교회 역사에도 하느님께서 끝없이 당신의 교회에 함께하신 현존은 희망의 등불이 되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분명한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늘 참회하고 성찰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듯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OSV


“저는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가 현대 세계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당당히 말씀드립니다.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의 죄와 우리 자신의 죄로 고통과 수치를 느끼더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인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 주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시간을 기쁘게 봉헌하며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감사드립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제76항)

교회 역사는 또한 끝없는 논쟁의 역사였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미사 안에서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신앙고백도, 글자 하나하나에, 문장의 내용 하나에도 서로 달리 주장하는 학파와 세력들 간의 숱한 논쟁과 싸움과 피 흘림 속에 단죄와 이단 선언이 오고 갔던 미움과 증오가 서슬 퍼렇게 녹아있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처럼 어두운 교회의 역사 안에 교회가 하느님의 집이며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활화산처럼 이글이글 살아 움직이며 교회를 바른 길로 이끄시는 성령의 현존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현대의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20세기가 흐르는 동안 이어져온 교회의 오랜 역사에 눈길을 던져보면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갈래의 큰 흐름이 어찌 눈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물의를 일으킨 몇몇 교황들, 강제 개종, 종교재판의 화형대, 십자군들의 방종, 세속적인 권력과의 갖은 타협 등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교회의 힘으로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강렬한 섬광 같은 메시지인 복음, 특출한 성인들, 수많은 구호단체들에서 펼쳐온 겸허한 봉사, 조용히 경배 드리는 가운데 제각기 다르지만 결연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바쳐온 수많은 남녀들이  있었다.”(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마음산책, 145쪽)

진정 이 같은 교회 역사를 통해 거룩한 우리 교회도 결국 죄인들이 모인 곳이며 결점투성이인 인간들이 참회와 성찰을 일구는 집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보다 나은 미래의 희망과 기쁨과 자유를 찾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죄인인 내가 요나의 고백처럼 감히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지만 하느님 자비의 용서와 위로, 포용과 사랑으로 이제 그 거룩한 집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찬양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네옵니다.

“저 역시 하느님의 명령을 저버린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로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거룩한 예언자가 된 것입니다. 아직도 감히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을 우러러보기 송구스러우나 그분의 자비로 다시 볼 수 있는 희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1-2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5

집회 4장 12절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